하재영(시인)

21세기로 넘어오는 과정 속에 우리 현대사엔 많은 인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었고, 그 사건 중에는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것도 많다. 그 대표적인 일이 1970년대 정권 연장을 위해 유신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그에 따른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예이다. 당시 권력의 핵심부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선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갖은 고문으로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정의는 권력 앞에 무참히 무너졌고,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은 숨을 곳을 찾아 밤길을 헤맸다. 어느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모처에 끌려가 반죽음의 상태로 나와 폐인으로 삶을 마감해야 했다. 그런 사회 환경 속에서 일반인은 물론 많은 종교인까지 권력에 동조하며 부와 명예를 차지하려 했다.

지난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을 생각하면 암울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1987년 6월 항쟁 시위대가 명동성당을 피신처로 머물 때도 김수환 추기경은 "나와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며 핍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섰다.

그런 행동이야말로 하느님 말씀에 따르는 일이라고 여겼다.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하느님(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사회의 교회와 신도들이 진정 예수님의 말씀에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 묻게 된다.

지난 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조사한 '교회 신뢰도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 교회를 신뢰하는 성인은 10명 중 2명 꼴도 안 된다. 조사 항목 중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항목에 '그렇지 않다'가 50.8%, '보통'이 35.2%, '그렇다'가 14% 로 되어 있다. 특히 관심을 끈 항목 중 교회가 신뢰를 받기 위해 바꿔야 할 점으로는 '교회 지도자들'이 25.5%, '교회의 운영'이 24.4%, '교인'이 17.2% 순으로 나타났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구 끝까지 선포하겠다는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과 행동은 일반 평신도와 많이 달라야 할 것이다. 목회자들이 시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삼이사처럼 생각과 행동이 대동소이하다면 빛과 소금을 추구하는 교회의 소명과는 거리가 멀다.

기독교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근본으로 한다. 성경에 흐르는 핵심은 사랑이다. 성경에서는 사랑의 실천 방법을 다양한 비유 말씀으로 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장 21절)고 한다. 그렇다면 '내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 성경의 곳곳에서 가르치고 있듯이 비천하고, 가난하고, 힘 없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일이다.

한국 가톨릭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김수환 추기경은 어려운 시절에 약자를 곁에 두었다. 그렇기에 가장 존경받는 한국의 인물로 추앙되기도 했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과 말을 듣기 위해 모였다. 궂은 세월의 갈피에서 등불을 밝히고, 위안을 주었던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이제 그의 언행은 기록물에서나 볼 수밖에 없다. 마지막 가면서도 앞 못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빛을 선사했다고 한다. 그의 선종은 늘 부자를 지향하며 비대해지고 있는 한국의 교회, 언행 불일치로 신뢰를 주지 못하는 한국의 목회자, 신도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복음 19장 24절)라고 성경엔 비유하고 있다.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뒷모습에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 고통받는 자가 따오르는 이유는 오늘 우리 사회가 어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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