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버들(편집부 기자)

셰이커(shaker)에 드라이 진 1온스, 체리 브랜디 1/2온스, 레몬주스 1/2온스, 설탕시럽 1티스푼을 넣고 흔든 후 잔에 따른다. 얼음을 넣고 차가운 소다수 또는 사이다를 가득 채운 다음 오렌지와 체리로 장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칵테일의 이름은 '싱가폴슬링(Singapore Sling)'. 상쾌하고 달콤한 맛에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이 '동양의 신비'라고 극찬했던 칵테일이다. 1915년 싱가포르 래플스 호텔의 한 바텐더가 해질녘 싱가폴 리버(Singapore River)의 벤치에 앉아 있는 노부부를 보고 만들었다. 그래서 '싱가폴슬링'은 황홀한 노을빛이다.

칵테일 '싱가폴슬링'은 싱가포르의 부와 낭만, 아름다움의 함축이라 할 수 있다. 탄생 배경이된 노부부의 모습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100여년간 영국의 식민지배를 겪었지만 아시아 부국으로 급부상한 싱가포르인들의 자부심과 닮았다.

싱가폴 리버는 사실 강이 아니다. 육지가 부족한 싱가포르는 바다를 메워 국토를 넓혔고, 매립지와 매립지 사이에 강이 생겼다. 그래서 이름은 '강'이지만 물은 바닷물이다.

포항에도 비슷한 곳이 있다. 현재 죽도어시장 뒤편을 흐르는 동빈내항.

100여년 전만해도 동빈내항은 효자방면에서 양학동을 거쳐 흐르는 지류, 서산기슭을 따라 지금의 '나루끝'을 거쳐 학산천으로 이어진 지류, 그리고 경주와 연일 방면에서 흐르는 형산강 지류, 이 세 갈래의 지류를 끼고 있던 폭이 매우 넓은 강이었다. 영일만과 만나는 곳이기에 물은 염분을 품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사람들이 거주하기 힘든 불모지였으나 1916년 대대적인 형산강 제방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개간과 매립을 통해 새로운 지형이 탄생한 것이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고 도시가 팽창하면서 동빈내항은 포항시 발전의 상징이자 상흔의 현장이 됐다. 도시가 커질수록 동빈내항은 더러워져 갔다. 인구 50만 시대가 된 지금은 항구라기보다는 포항시 오수(汚水)의 마지막 종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포항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개작업과 항만준설사업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동빈내항 자체를 바꾸지 않는 이상 큰 효과는 걷지 못했다. 박승호 시장은 동빈내항을 동빈운하로 건설, 친환경도시로 탈바꿈할 계획을 공포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수십년간 오물로 찌들은 강을 밑바닥부터 정화하고 친수공간으로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보상문제라는 큰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포항시의 고충이 커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투명하고 일관된 행정력을 집중하고 전 시민의 관심과 애정이 모아진다면 동빈내항을 포항의 자랑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싱가포르가 존립할 수 있었던 것도 초대수상 리콴유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과 국민들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리콴유의 옹골찬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포항시에도 중요한 교훈이 된다. 보상문제와 사업의 실효성 등을 따지며 무조건 반대하기에 앞서 시 행정을 믿어보자. 믿음이야말로 가장 값진 격려며 사업 추진의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시민들의 믿음을 목숨처럼 여기는 공직자의 자세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동빈내항 복원 완공이 예정된 2011년. 맑은 물이 흐르는 동빈내항 강가에 세워진 예쁜 테라스의 카페에서 영일만의 석양을 바라보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그 날이 오면, 포항시의 자부심이 된 '영일만슬링'이라는 칵테일이 탄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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