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롭게…”

큰 손님로 참석한 정장식 포항시장이 “항상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불의를 보고 용감하게 맞설 때 주위의 칭송을 받을 수 있다”고 훈화하고 있다.

아이들이 느끼는 ‘어른’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많을 것이다. 비단상자 속처럼 황홀할까? 마술사의 연기처럼 신비한 속일까? 아니면 술만 먹고 산다는 독사처럼 징그럽고 무서운 세계일까? 괴테의 대답은 이렇다. 아이들이 어른을 너무 가까이 바라보면 일부분 밖에 보이지 않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자세한 점을 관찰하지 못한다.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어른이 되었을 때이다. 결국 사물의 관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장이다.

날따라서 키 워드(Key word)는 ‘성장’으로 요약된다. 성장이란 개인이 육체적 정신적 성숙을 통해 스스로의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이고 자기결정 능력이 증대하는 모습이다. 즉 어른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격체로 성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맑은 영혼과 빛나는 지혜를 가지도록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용기와 힘을 가지도록 격려해주고 여린 마음을 안아주는 사랑도 필수적이다.

참석한 여자 내빈들이 어른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의미로 여자 성년자들에게 화관을 씌워주고 있다.

16일 제33회 성년의 날 포항시 집체 성년례가 선린대학 만나홀 3층에서 열렸다. 포항시가 주최하여 큰 손님으로 포항시장이 참석했고 성년례를 주관했다. 연옥색 도포를 입은 남자에게 관을 씌워주고 예쁜 활옷을 입은 여자에게는 족두리를 얹어주었고 술 마시는 법도도 가르쳤다. 아름다운 세대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훈훈한 자리였고 잊혀졌던 우리겨레의 오랜 전통과 동방예의지국으로서의 향기로운 체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세계 모든 종족들에게는 성년식이 있다. 가장 전통이 깊은 것은 유대인들의 할례의식으로 이슬람 등 많은 종족들에게도 파급되었다. 아프리카에는 이를 뽑는 의식도 있고 문신을 하거나 코나 귀를 뚫는 경우도 있다. 대개의 경우 성년의식은 신체적인 고통이 수반되는 가학행위가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어른 되는 통과의례였다. 아마존 강 유역에선 여자의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버리기도 하고 발리 섬에서는 송곳니를 자르기도 한다.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는 30m 정도의 높은 탑에서 포도넝쿨을 발목에 감고 뛰어내리는 생사를 건 성년식도 있다. 이것이 오늘날 번지점프로 발전했다 한다.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어른이 되는 성년식으로 관을 쓰는 관례가 있었다. 일단 관례를 거치고 관을 쓰게 되면 아무리 나이 많은 총각 앞에서도 어른 대접을 받았고 그것이 당연시 되었다. 따라서 한국적 성년의식의 핵심은 ‘관’을 쓰는 일이었다. 관은 곧 예를 뜻하는 것이며 예를 지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자격을 갖추는 일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당시에는 관이 없다는 것은 인격적인 실격이요 인간상실로 보았다. 관은 선비사회의 예를 강조하는 정신적인 채찍이었으며 자율적인 인간성의 기틀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을 쓰고는 죄를 저지를 수 없었으며 관을 쓰고는 예의를 벗어나는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성년자 대표들이 “이제 성년이 됨에 있어 오늘이 있게 하신 조상과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자손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완전한 사회인으로서 정당권리와 신성의무에 충실할 것”을 맹세하는 성년선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관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관의 정신적 의미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의 의식 속에 ‘마음의 관’은 우리들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박혀 한국인을 지배하고 있다. 소위 칼 융이 분석 심리학에서 주장한 집단무의식으로서 마음의 관인 예(禮)가 우리들의 관념에 영향을 주고 민족정체성(Identity)으로 자리하고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성년을 축하하는 전통의례를 치르는 곳이 많았으나 점차 서양문물의 범람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문화관광부에서 전통 성년식의 사회적 의미를 깨우쳐 줄 목적으로 1999년 표준 성년식 모델을 부활했다. 포항시도 이에 따라 전통 관례복장을 갖추고 ‘큰손님’인 시장이 의식을 주관하여 상견례, 삼가례, 초례를 거쳐 성년선언으로 이어지는 성년의 날 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올해로 청소년에서 성년을 맞는 많은 남녀성인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어른 되는 일이 좋고 신나는 일만은 아니다. 그만한 책임이 따르고 해야 할 역할이 또한 커진다는 사실도 명심해야할 것이다.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술잔을 받아들고 술 마시는 법도를 교훈받은 뒤 성년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성년을 맞는 사람은 특히 올바른 인생설계를 해야 한다. 나와 이상과의 만남만큼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생명과 사명의 만남’이야 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깨달아 책임 있는 어른이 되기를 기대한다.

조나단의 갈매기는 한평생 물고기를 찾아 휘젓고 다니는 일상을 거부했다. 갈매기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 조나단의 삶의 목표였고 동포 갈매기들에게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 성년을 맞는 여러분들도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는 조나단의 메시지를 깊이 생각할 때이다.

제갈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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