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경북야구협회장)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미국·베네수엘라·푸에르토리코 등은 세계 최강의 리그인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고, 일본도 이치로를 비롯한 다수의 메이저리거들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참가국들 모두 대한민국의 선수들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이는 우리의 프로야구 역사가 28년에 불과함에도 전세계 내로라하는 프로선수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야구 역사는 104년전 YMCA 필립 질레트 선교사의 손에 의해 무명적삼에 짚신을 신고 빨래방망이 같은 배트를 들고 공은 실뭉치에 가죽을 덧씌워 만들면서 시작됐다.

일제강점 시절에는 팔방미인인 이영민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고, 해방 이후에는 고교대회가 창설되고 은행을 중심으로 실업팀들이 늘어나면서 실업야구의 중흥기를 이루었다. 이어 1970년대에는 야구붐이 고교야구로 옮겨붙었으며 동대문구장은 언제나 인산인해였으며, 프로야구의 탄생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82년 김재박과 이선희가 이끄는 대표팀은 슈퍼월드컵에서 마침내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쾌거를 달성 했다.

나아가 지난 1991년 시작한 한·일 슈퍼게임을 통하여 세계 수준과 격차를 좁혀 나갔으며, 1994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한국야구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 뒤를 이어 김명환,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 최희섭, 추신수등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며, 이들의 활약으로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꿈의 무대지만 한국 선수들도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조성민, 선동열, 이상훈, 이종범등 일본야구의 진출 또한 큰 성과임을 배제 할 수는 없다.

특히 선동열, 이상훈, 이종범 등은 국내프로야구를 호령하고 일본으로 넘어갔고,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국내프로야구의 수준이 높아졌음을 증명했다.

그들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한국야구에 큰 스승이 되었고, 보는 관중의 지식수준도 선진국형이 되어갔다.

지난 1998 방콕아시안게임에 드림팀을 출격시켜 금메달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일본을 꺾고 사상 첫 동메달 따냈고, 2000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까지 휩쓸었다.

특히 지난해 베이징 마운드의 태극기는 잊을 수가 없는 값진 금메달이었으며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이변이었다.

하지만 WBC 결승진출이 말해 주듯이 더 이상은 이변이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는 야구 강국으로 우뚝 섰다.

과연 한국야구의 힘은 집중력과 애국심이 바탕이 된 팀워크는 아무리 메이저라고 할지언정 따라올수가 없는 부분이다. 또한 일본 못지않은 탁월한 분석력과 김인식감독의 선 굵은 야구는 일본도 따라 올수 없는 우리만의 야구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야구칼럼리스트인 톰 버두치는 "당신의 팀을 자랑스러워 하세요. 당신의 팀은 정말 놀랍고 환상적인 팀입니다. 당신나라의 리그가 바로 빅리그입니다"며 한국야구를 세계 최강으로 인정했다.

경북야구 역사50년만에 드디어 포항에도 야구장을 건립을 하게 되어 온 시민이 자축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프로구단 삼성라이온즈에서도 연간 12게임을 포항구장에서 치르기로 약속해 점차적으로 퇴색되어가는 야구의 뿌리인 초, 중, 고등학교의 야구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다.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50여개의 사회동호인 1천500여명들도 정규화된 야구장에서 즐길 수 있어 한껏 고조되어 있다.

한층 더 나아가 포항시민 모두가 참여하여 보면서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