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세상이 햇빛마을 되었으면

레고닥터 진료

햇빛마을은 이름처럼 마음이 밝고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하얀 나라 설국이다. 천국에 오르는 사다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란 말이 여기에 오면 실감한다. 너희가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도 햇빛마을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 뜻을 알게 된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의 목을 조른 비정함에, 생활고에 허덕이던 노부부가 농약을 마셨다는 소식들이 이 아침을 우울하게 한다.

지난달,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패밀리 스토리의 주제는 ‘101호 할머니’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상한 소리에 문을 따보니 치매 할머니가 캄캄한 방안에서 후라이팬을 두드리고 있었다. 자식을 기다리는 팔순 할머니의 어둔한 독백 ‘날 버리고 모두 도망갔다’는 말이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노인들이 버려지고 있다.

퍼즐 게임으로 치매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이고 14%이상이면 고령사회가 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22년에 14.3%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사회 진입이 예측된다. 2050년에는 노인 비율이 세계 최고로 10명이 6,9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또한 90년 20만 명이던 치매환자가 20년 후에는 무려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성모자애원 햇빛마을은 5년 전에 개원한 노인전문요양시설로서 치매환자 105명을 수용하고 있다. 일과표에 따라 기저귀 교환, 체위변경, 혈압체크 등 50여명의 생활지도원들이 밤낮으로 갓난아이 돌보듯 한다. 중증 치매환자들의 목욕에서부터 대소변 받기, 배설물의 청소까지 햇빛마을 가족들은 쉴 시간이 없다. 새로운 사랑의 언어를 배워야 하며 동심이 되어 함께 얘기하고 친구가 되어 놀아준다.

인근의 65세 이상 경증 치매노인 20여명도 함께 모시고 재활 물리치료, 취미활동 등을 하는 주간보호센터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서예에 전념하는 할아버지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8순, 9순 잔치사진이 걸려있고 문화체험기록과 바다물놀이 사진들도 보인다. 그림 그리기와 ‘나무와 새가 있는 만다라 색칠하기’는 서툰 솜씨지만 심오한 ‘만다라’상을 표출했다.

욕쟁이 할머니가 문간에 버티고 있고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서 아들 이름만 부르는 노인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토록 찾던 아들이 눈앞에 와도 모른다. 보는 사람마다 ‘용돈 좀 주세요’하는 할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거두절미하고 ‘밥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 일과인 할머니도 있다.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노인이 있고 하루 종일 무엇인가 집어 먹는 시늉만 하는 사람도 있다. 밥그릇을 패대기치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해녀 할머니는 미역 따는 손짓을 밤낮으로 반복하신다. 수족관 속의 금붕어를 회쳐 먹자고 대드는 노인의 등살에 땀을 빼기도 한다.

무성하던 초록 기억의 잎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겨울나무처럼 허허로운 사람들이다. 비록 기억은 상실했지만 마음속에는 가족이 살아있고 천국이 함께 한다. 자원봉사자들도 힘겨운 일을 마칠 때면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으며 한없이 마음이 맑아진다고 한다. 울고 있는 할머니를 안아주면 울음을 그친다. 다친 마음이라도 사랑으로 치유되지 않는 것이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 내면이 모두 천사임을 안다고 했다.

물리치료실에서 치매 노인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스스로를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로 겸손했던 테레사 수녀도 병든 자를 돌보는 일은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베품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라 했다.

포스코, 포항전화국, INI스틸, 해병대, 영일고 등 자원봉사단체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민들레후원회가 꽃씨처럼 사랑을 실어 나른다.

지난 5월 4일 햇빛마을은 이런 공적들로 제1회 영암문화상 사회봉사부분 본상을 받았다. 황대봉 이사장의 기념사처럼 ‘큰 사랑에 작은 보답이겠지만 우리사회가 더 밝고 건강해 질 것’으로 기대한다.

누구나 늙으면 노인이 된다. 문제는 그런 노인들이 급속히 불어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인구 고령화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유도하므로 노인복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정부는 2007년 노인요양보험제도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하루빨리 고령사회의 기반조성, 가정봉사원(Home helper)파견사업 확대 등 전방위적 노인복지정책 실현을 기대한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포항에는 요양시설 확충, 노인복지회관 건립계획 등이 추진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아니라도 우리사회에 버려지고 있는 노인들의 기본인권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책무다.

할머니 할아버지 칠순잔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사랑’이다. 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그 사랑이 온 누리를 햇빛마을로 만들 수 있다.

햇빛마을 천사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햇빛마을을 나서고 있다. 김우수기자 woosoo@kyongbuk.co.kr
제갈태일편집위원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