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훈<포항강변교회 목사>

20대 부부가 함께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4개월 된 딸이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죽어있더라는 뉴스를 접했다.

그들 부부는 평소에는 두 시간 정도 하던 게임을 그날따라 네 시간을 했다고 한다. 두 시간만 하고 집에 돌아올 것을....후회한다고 한다.

20대 부부라는 말의 뉘앙스 속에는 무엇인가 좀 가볍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가볍기 때문에 가정생활도 가볍게 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 본다. 부부 생활도 가볍게 즐기면서 했을 수 있겠고, 아이도 가볍게? 낳았을 수 있겠고, 그리고 아이 양육도 가볍게 했을 수 있겠다고 상상하는 것은 너무 무례한 짓일까?

‘가볍다’라는 말이 무조건 나쁜 의미는 아니다. 인생은 때로 가볍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매사에 무게를 놓고 살다보면 삶이 무료해지고 피곤해지고 짜증스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가벼움의 기준이 무엇이냐? 이다.

부부가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모습이다. 취미생활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부부생활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부 사이에 취미생활의 공통분모를 찾지 못해 불행한 부부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삶의 우선순위를 배제해 놓고 어떤 부분에 몰입하거나 깊이 빠져든다는 것은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중독의 본성이 있다고 한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여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를 망각해 버리거나 아니면 상실해 버리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을 ‘최면, 무아지경’ 즉 트랜스trance라고 한다. 이동연 님의 책 ‘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법칙’ 에는 트랜스를 두 종류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삶의 휴식을 위해 두 종류의 트랜스를 경험한다. 하지만 도박이나 마라톤, 격렬한 비트 음악이나 하드록 등, 한 가지에 집중적으로 흥분하여 이성의 활동을 쉬게 하는 긴장성 트랜스이다. 다른 하나는 클래식 음악이나 묵상, 명상, 낚시, 자기 최면 등으로 휴식을 취하는 이완성 트랜스이다. 긴장성 트랜스도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꼭 그 과정을 통해야만 트랜스를 얻는 집착 내지는 강박증이 되기 쉽다.”

사람들에게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트랜스 경향을 가지고 있다.

전자의 20대 부부도 어떤 의미에서 부부가 함께 즐기면서 자신들만의 트랜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트랜스의 결과가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갓난아기를 혼자 방안에 두고 부모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트랜스에 빠져 네 시간씩이나 집을 비웠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트랜스는 긴장성 트랜스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긴장성 트랜스는 위험하고 무서운 면을 소유하고 있다. 스스로 절제할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다면 일단은 자기 최면에 빠진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의 20대 부부는 “두 시간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그만 네 시간이 지나 버렸데요.” 라고도 했단다.

자녀를 둔 부모가, 그것도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이를 둔 부모가, 아이를 지켜보는 재미로만으로도 행복해야 하고, 아이 곁에서 아이와 함께 즐거워해야 할 부모가 시간이 두 시간이 지나는지, 네 시간이 지나는지 모르고 게임에 몰두했다면 부모로써의 자격을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20대 부부, 풍기는 뉘앙스는 가벼워도 삶은 어떤 의미에서 무게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는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책임과 의무조차도 망각하거나 상실할 정도로 어떤 부분에 몰입하거나 빠져든다는 것은 건강한 사람의 모습은 아니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삶의 절제와 조율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그런 기준에 의해 삶을 살아가게 된다. 20대 부부의 모습이 현대인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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