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포항강변교회 목사>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준을 말하라면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이웃에는 분명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학대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아동 보육 기관에서 아동들의 인권 침해 사례가 드러나면서 또 한 번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가정과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보호해 주고, 양육해 주겠노라는 마음은 천사의 마음이다. 자기 자식처럼 돌보아 주고 뒷바라지 해 준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제 자식조차도 때로는 귀찮아 질 때가 있다는 것이 아이들을 길러 본 부모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그럼에도 남의 자식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며, 재워주며, 공부시켜 건강한 사회인으로 양육해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의 눈들이 그런 기관이나 시설 쪽으로 집중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어린이들을 학대했다는 것은 쉽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부류들이 있다. 속된 말로 ‘거머리 같은 인생’들이 있다. ‘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 먹지’ 라며 지탄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겨워 죽지 못해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에게 힘과 법으로, 때로는 좋은 머리로 공갈과 사기로 접근하여 그들의 힘겨운 어깨위에 더 무거운 짐을 지워놓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을 향한 우리들의 무관심이다.

백일장 심사를 위해 열차를 타고 강경을 다녀오는 길에 김재진님의 시집을 읽었다.

“눈물로 쓰는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마음을 읽었다. 시인이 바라보는 현실의 높은 벽을 시인의 입장에서 공감하면서 나도 마음속으로 울었다.

시인의 고백대로 우리 주변에는 제대로 못 먹고 병든 사람이 아직도 너무 많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 때로 눈물로 시를 쓸 때가 있습니다./ 방학이면 급식을 받지 못해/ 끼니를 걸러야 하는 아이들을 보거나/ 달구경도 못하는 달동네에서/ 손주들 데리고 연명하다 자리에 누운/ 병든 할머니를 보거나/ 어머니 날/ 아 으 오 우....끊어지는 모음의 음절만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하며 노래 부르는/ 뇌성마비 장애자의 ‘어머니 은혜’ 들을 때/ 눈물보다 시가 더 젖을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죽고, 정신이상에 걸린 엄마 옆에서/ 가장 갖고 싶은 게 뭐냐는 후원자의 질문에/ 겁먹은 듯 기어드는 소리로/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대답하는 아이의 눈망울은/ 말뿐인 시를 흐느끼게 합니다./ 구석구석 숨어있던 증오와 분노,/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어느새 녹여버린/ 모음뿐인 노래를 따라 부른다./ 시보다 더 진실한 게 눈물이란 걸/ 아프게 깨닫습니다./ 세상이 외면하는 가난 때문에/ 세상이 외면하는 아픔 때문에/ 제대로 못 먹고 병든 사람이/ 아직도 우리 곁엔 너무 많습니다./ (전문)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아직도 많은 세상에 상대적으로 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때론 감사의 제목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죄인이 되기도 한다. 보고도 못 본척해야 할 때, 알면서 모른 척 해야 할 때, 도와달라고 내미는 손길을 보면서 태연히 외면해야 할 때 참으로 스스로 자책한다.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는 사회를 소망해 본다. 말뿐인 사치스런 소망일까?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발걸음 소리가 과거보다는 더 크게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이...오늘도 어려운 우리의 이웃을 찾아가서 만나려는 착한 우리의 이웃들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희망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려움을 만날지 장담할 수 없는 존재다.

오늘의 부함이 내일의 부함을 보장할 수 없고, 오늘의 건강이 내일의 건강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덜 어려울 때, 더 어려운 그 누군가를 위해 섬겨주고 베풀어주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리라.

그것이 가장 사람다운 삶이고,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삶이리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또 어려움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그런 날을 감히 소망하며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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