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복의 명산 트레킹 2 - 3 중국 태항산대협곡

안개가 걷히며 나타난 웅장한 협곡 모습.

주가포에서 왕망령(해발 1665m)까지 30분 소요된다. 왕망령에는 중국 '난화(蘭花)그룹'이 엄청난 관광개발을 하고 있다. 관광버스 800대를 동시에 댈 수 있는 주차장, 일대를 관람하는 케이블카, '왕망령생태빈관(王莽領生態賓館)'이란 호텔(방53개)과 방 500개짜리 초대소(리조트)를 건설하고 있으며 일대의 관광개발에 5억위안(1,000억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단다.

 

우리 일행은 시간이 여의치 못해 셔틀버스로 올라왔지만 주가포에서 왕망령까지 3시간의 능선 산행으로 왕망령 일대의 거대한 자연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니 다음번에는 꼭 능선산행을 해봐야겠다.

 

팔선봉 주위의 기묘한 바위 봉우리

저녁 7시가 다 되어 왕망령 정상에 있는 왕망령생태빈관(王莽領生態賓館)인 호텔에 도착했다. 짙은 안개와 빗방울로 주위를 분간할 수 없다,

 

대규모의 리조트공사가 한창이고 손님이라고는 우리 일행뿐인 텅 빈 호텔의 미로(迷路)같은 복도를 오르내려 방에 드니 왠지 설렁하고 엉성한 것 같다. 아직 외국인을 받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넓은 식당에는 깔깔대는 여종업원만이 동그랗게 모여 있다.

 

이 곳 왕망령에서의 최고 장관은 일출(日出)광경이라고 하는데 날씨기 험악해 그 장관을 보기에는 힘들 것 같다. 일출광경을 위해 투숙객에게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종업원들이 방문을 두들긴다는데 내일 새벽 방문소리를 기대해 본다.

관일대에서 손 흔드는 일행들

 

왕망령 일대를 개발하고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가치가 빛을 발하려면 날씨가 많이 도와주어야 할 것 같다.

 

오랜 역사와 영욕을 함께 한 왕망령에서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태항지존(太行至尊)'의 품에 잠든다.

 

'태항지존(太行至尊) 왕망령(王莽嶺)' -태항산의 가장 빼어난 풍광이 바로 왕망령이라고 일컫는 말이다.

 

 

만선산 협곡의 아찔한 모습

 

10월 8일, 종업원들의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다. 일출의 장관을 보는 데는 실패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선다. 혹시나 안개가 걷히면 '태항지존(太行至尊)'의 위용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관일대(觀日臺)'로 향한다. 해발 1700m의 '왕망령(王莽嶺)'에서의 일출(日出) 관망을 위해 가장 조망하기 좋은 곳을 '관일대(觀日臺)'라 하여 호텔에서 10여분 떨어진 곳에 있다. 안개 자욱한 산길을 따라 가보니 발아래 천길 낭떠러지가 온통 구름천지다.

 

여기서의 조망이 일품(逸品)이라는데 아쉽게도 볼 수 없다. 왕망령에서 보는 일대의 풍광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세워두고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는 사진작가들의 인내심에 감동하며 뒤돌아 나온다.

산서성에서 왕망령을 오르는 북대문

 

희뿌연 안개마당에도 기이하게 생긴 바위무더기가 눈길을 잡는다. 왕망령 일대의 축소판 같아 신기하다.

 

왕망령의 빼어난 풍광을 두고 중국시인 이예(李銳)는 다음과 같이 극찬의 시(詩)를 읊었다 한다.

 

 

 

'부등왕망령 기식태항산(不登王莽領 豈識太行山)

 

천하기봉취 하수오악반(天下奇峰聚 何須五岳攀)'

 

 

 

시(詩) 풀이를 하자면 '왕망령을 오르지 않고는 태항산을 어찌 알겠으며, 천하의 기묘한 봉우리가 여기다 모였는데 오악(중국의 오대명산)을 꼭 오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왕망령의 뛰어난 풍광인데 제대로 볼 수 없다니 운(運)이 따라주질 않는 듯하다.

 

중국의 오악(五岳)은 동, 서, 남, 북, 중악으로 불리며 동악(東岳)은 오악중의 으뜸인 산동성(山東省)에 위치한 태산(泰山, 1524m)이며, 서악(西岳)은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화산(華山, 1997m), 남악은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형산(衡山, 1290m), 북악은 산서성(山西省) 취원현에 위치한 항산(恒山, 2017m)이며, 끝으로 중악은 하남성(河南省) 중부에 있는 숭산(崇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림사(少林寺)가 여기에 있다.

 

또, 이런 문구도 있다. '태항옥배 행운유수(太行屋背 行雲流水)' - '태항산 지붕을 감싸 도는 구름이 흐르는 물과 같다.'

 

아무튼 어떤 미사여구(美辭麗句)보다 일가견(一家見)이다. 다음 기회에는 태항지존의 진면목을 꼭 보아야겠다.

 

이런 저런 상념(想念)에 젖어 안개 속을 헤집어 내려오다 보니 점점 시야가 트인다. 운해(雲海) 속으로 왕망령 일대의 기암절벽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다. 협곡사이로 피어오르는 운무(雲霧)가 춤을 추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운해를 헤집고 나타난 팔선봉(八仙峰) 기암, 괴봉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휘둥거리게 하고 감탄의 연발이다.

 

수많은 책을 겹겹이 올려 놓은 듯한 바위덩어리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점점 날씨가 좋아진다. 1시간여를 안개와 씨름하다 내려선 곳이 산서성쪽 북대문(北大門) 왕망령 출입구에 닿았다. 이제부터 또다시 급경사 돌계단 길을 내려서야 한다.

 

2700개나 되는 급경사 돌계단을 내려간다. 구름 깔린 협곡을 끼고 한없이 50여분을 내려서니 '남마암(南馬庵)'이란 마을이다. 이 코스는 아직 개방되지 않은 곳인 모양이다. '미개방구역유객지보(未開放區域遊客止步)' 라는 붉은 글씨가 눈에 띈다. 우리말 표현이 우습다. '지구(地區)를 해방하고 있지 않습니다. 관광객은 멈추어 섭니다' 라 표기되어 있다. 차도가나 있는 마을 이지만 협곡지대로 다시 걸어 내려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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