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예술 교육 현장을 가다

아난탈로 아트센터에서 음악수업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교회에서 작은 연주회를 열고 있다.

핀란드어 '휘바 휘바(Hyvaa Hyvaa)'는 영어의 '굿(Good)'이란 뜻으로 우리말로 '잘' 또는 '잘했어' 쯤으로 풀이될 것이다. 핀란드의 문화예술교육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휘바 휘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 핀란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15세 이상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수학과 과학뿐만 아니라 읽기까지도 연거푸 1위에서 3위까지의 높은 성취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핀란드 정부의 '모든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질 높은 교육을 제공 하겠다'는 공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

아난탈로 아트센터를 찾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이 입체적 조각으로 만들어진 파블로 피카소의 '책 읽는 여인'을 둘러보고 있다.

핀란드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거나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적다. 또 학교 간 또는 학생간의 성취도 편차도 크지 않다. 그뿐만 아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1인당 교육비가 저렴하고 학교 교육 이외의 사교육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이렇게 볼 때 핀란드 학생들의 놀라운 학업성취는 훌륭한 공교육 제도와 성공적인 학교교육 때문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문화예술교육 수준 또한 예외는 아니다. 수도 헬싱키에는 대표적인 공공 문화예술 기관인 아난탈로 아트센터(Annantalo Arts Center)가 있다. 아담한 정원이 딸린 학교로 사용되던 3층짜리 낡은 건물이지만 22년 전 헬싱키 시청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문화예술활동을 위해 알뜰하게 꾸며 사용하게 하고 있다.

헬싱키 시립도서관은 스튜디오가 있어서 자작곡을 연주하고 편집해 CD에 담은 음방도 낼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고 도서관에서 들을 수 있게 비치도 해 놓았다.

때마침 건물 전면에는 '파블로 피카소& 알렉산더전'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내년 1월초까지 헬싱키 아테네움 아트미술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전'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기획전시회를 알리는 것이다.

2층 로비와 연결된 전시실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만져보고 가족과 함께 작품 속에 들어가서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피카소의 '책 읽는 여인'을 입체적으로 분리해 만들어 놓았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입체주의 화가 피카소의 작품을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미술가 알렉산더 레히슈타인(Alexander Reichstein)이 만든 것이다.

아난탈로 아트센트와 학교는 물론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등 문화관련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문화예술 기획행사도 연중 펼치고 있다. 학교처럼 공적 영역이라고 볼 수 없는 아난탈로 아트센터의 운영자금도 헬싱키시에서 연간 156만 유로,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12만 유로를 지원하는 등 세금으로 운영된다.

아난탈로 아트센트는 그림, 비디오, 에니메이션, 춤, 언어를 다루는 예술 전분야에 모두 50여 명의 전문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다. 화실과 극장, 비디오실 등 11개의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다. 미술과 음악 연극 등 모든 분야의 예술 행위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제작해서 감수성을 기를 수 있게 시설을 꾸며 놓았다.

'파블로피카소& 알렉산더전'과 같은 학교 연계 수업은 '5+2 원칙'으로 진행된다. 오전 9시와 11시 등 두 시간 간격으로 연기 예술 댄스 등 3개 반이 진행되는데 교사와 학생들이 한 번 이곳에 오면 2개의 수업을 5주간 참석하는 형식이다.

이곳에서 학교의 예술교육과 별개로 깊이 있는 예술 실기교육을 연간 4천800여명이 수강하고 있다.

핀란드 교육이 추구해 온 핵심적 목적은 나이나 거주지, 경제적 형편, 성이나 모국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도서관도 한 몫 하고 있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는 우리의 중앙도서관 격인 헬싱키시립도서관을 비롯해 36개의 특성화된 도서관이 있다. 가령 깔리오도서관은 어린이 관련서적, 헬싱키대학 도서관을 겸하고 있는 비키도서관은 생태학관련 서적, 아라비아란타도서관은 팝과 재즈 관련 서적과 관련 활동들이 이뤄지는 특성을 가진 것이다.

헬싱키 시립도서관 기획자 크리스티나 비르따낸씨는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편하고 즐겁게 해서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돕는 곳"이라면서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도서관의 스튜디오에서는 작은 콘서트나 토론회, 작가와의 만남 등의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라디오나 TV로도 방송된다. 때로는 장관이나 유명 배우, 가수의 인터뷰 장소로도 이용된다. 독특하게도 유러비전 송콘테스트에 참가하는 사람을 위한 음향시설을 갖추고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이처럼 도서관을 단순 도서관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문화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공간으로 진화시켜 놓은 것이다.

이동도서관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기차역이나 수영장, 수퍼마켓을 찾아가고 청소년들에게는 책을 통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도서관은 커피나 밥도 먹을 수 있고, 창가나 구석진 곳으로 책상을 옮겨가서 공부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이 때문에 헬싱키의 아이들은 친구를 찾아 놀이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에서 기타 대여도 해주고 스튜디오에서 연주와 편곡, 제작까지 가능해 음악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이곳에서 음악을 완성해 CD에 담아 가기도 하고 도서관 한 곳에서 그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또 노인들을 위해서는 컴퓨터 전문가 렙톱닥터(Laptop Doctor)가 있어서 1대1로 컴퓨터 활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 같은 모든 도서관에서의 서비스 활동은 무료이며 재정은 시에서 지원한다.

인구 515만명의 핀란드에 미술이나 음악, 연극 등을 특별지도하는 문화교육센터가 800여 곳에 이르는데 모두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한다. 사립의 경우도 거의 형식적으로 수업료를 받고 있을 뿐이다. 방과후 예술교육의 경우 수업의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한 학기당 70~80유로로 우리 돈으로 치면 12만~13만원 정도다.

핀란드 헬싱키 북쪽 교외에 있는 꺄쁄라사립음악학교. 이곳은 학교라기보다 두어 평 되는 작은 교습실과 조금 넓은 강의실을 여러 개 갖추고 있는 음악학원같다.

세계적 음악가 시벨리우스의 나라답게 핀란드는 1969년 교사의 급여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한 음악교육법을 별도로 제정하기도 했다. 학교 교육과정의 음악 수업과는 별도로 꺄쁄라음악학교 같은 학원 형태의 공립과 사립 음악학교에 모두 정부지원이 가능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이들 학교에서도 수준 높은 강사진과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80% 이상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공립음악학교가 89곳, 국가나 시정부로부터 일정부분 재정지원을 받는 사립음악학교가 300여 곳으로 누구나 쉽게 음악교습을 받을 수 있다. 공립은 연간 400유로, 사립은 600유로 정도 학부모가 부담하면 된다.

꺄쁄라음악학교에서는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바순, 클라리넷 등 여러 가지 관현악기는 물론, 성악까지도 배울 수 있다. 이 학교가 중심이 돼서 1년에 100여회의 크고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작은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려 음악이 생활화되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학습 목표 또한 유명한 음악가를 배출하거나 유명 오케스트라의 단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 음악과 함께 풍요로운 인생을 즐기게 하는 것이다.

꺄쁄라음악학교 마르끼따 비큘라 교사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인생의 좋은 취미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음악수업에 참여시킨다"며 "사교육비 부담 없이 누구나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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