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예술 교육 현장을 가다 - 4. 독일, 문화예술의 씨를 뿌리다.

발도로프학교 학생들이 야외 수업에 나서고 있다.

학생 스스로 "자유, 최고예요"라는 말을 망설임 없이 하게하는 독일 학교 교육의 바탕은 무엇이며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함지박처럼 생긴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발도로프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학생 김정렬군(16)의 말처럼 이곳의 학생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재능을 키우는 교육을 받는다.

독일은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전 유럽의 절반이 폐허가 된 1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정신적 공황상태를 경험한 독일인들은 새로운 교육에 눈을 돌린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미래에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졌고, 그 결과 혁신적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이런 생각과 질문을 바탕으로 발도로프 교육이 생겨나게 됐다.

독일 발도로프학교 부속건물 전경.

1차 대전 이전까지 독일의 학교에는 신분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었고 노동자들은 초등학교만 다니는 정도였다.

전쟁이 끝난 후 교육혁신을 하자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계급, 계층이 없는 평등하게 교육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모든 어린이와 학생을 위한 교육인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청소년극단의 어린이 연극 '인생을 위한 양 한 마리'.

머리·가슴·손으로 배우는 발도로프

그 대표적인 학교가 발도로프 학교로 1919년 에밀몰트라는 당시 담배공장 공장주가 뜻을 세워 설립했다.

이 학교의 교육은 인간의 내재적 자유를 추구하며 교육의 통합성을 중시한다. 발도로프 교육은 지적, 신체적, 감성적 성장을 포함한다. 우리나라처럼 똑똑한 아이를 골라내는 교육이 아니다. 점수도 매기지 않고 유급제도 없다.

발도로프학교 세바스티안 베르크(Sebastian Berg) 홍보담당은 "모든 어린이는 그 자체로서의 독립된 인격체이며 어린이가 자신의 발달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아내는 것이 교사들의 역할"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학생의 재능 관찰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교육학에서의 발달단계론처럼 학생의 발달단계에 따른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해내고 조력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인 것이다. 학생의 내재된 능력을 취대한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인 셈이다.

이 학교의 교육 특징은 "잊어버려라"라는 것이다. 강제하지 않으면 심연 속에 잠기게 되고 씨를 땅에 묻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라고 한다. 억지로 암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 학교 교사였던 슈타이너가 창안한 '오이리트미(조화로운 리듬)'를 통해 인간의 정신이 육체와 결합하고 성장해 가도록 돕는다. '오이리트미'는 언어와 음악을 율동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발도로프에서는 머리와 마음 손으로 배운다.

모든 학생은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룬다. 12, 13학년이 끝나고 졸업하면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더라도 여러 분야에 잘 아는 자주적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학교에는 또 교장선생이 없다. 모든 학생이 평등한 것처럼 교사 또한 평등하고 교장이 없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100명의 교장이 있는 셈이다. 모든 교사들은 매주 목요일 한 교실에서 모여 학생지도를 위한 토론을 한다. 토론장에서는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도 되고 학교를 경영하는 교장의 입장도 되기 때문에 학생에게나 학교에나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지도 방식이나 경영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발도로프 학교에서는 학생이 원하면 음악도 할 수 있고, 미술도 할 수 있고 목공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프로그램을 갖고 긴 시간동안 교사와 학생이 함께 호흡한다. 학생들에게 이탈리아, 그리스 등 문화 유적지 등은 물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체험하는 기회도 많이 갖게 한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극단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단조로운 기타 선율을 배경으로 며칠 동안 굶주린 늑대가 맛있는 저녁 식사를 상상하며 도끼빗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고 양에게 다가간다. 양은 늑대의 유혹과 공격을 슬기롭게 이겨낸다.

늑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을 읽고 있는 양에게 가까이 갈 때마다 관람석의 아이들은 고함을 치며 자지러진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청소년극단이 '인생을 위한 양 한 마리'라는 연극을 공연하는 장면이다.

이 극단은 이처럼 5살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극단이다.

이 극단의 모토는 '현대적이고 유럽적인,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극단'이다.

독일에는 극단이 많이 있다.

성인극단은 물론 청소년들을 위한 극단 등 특성화된 극단도 많이 있다. 슈투트가르트의 청소년극단도 그중 한 곳이다.

슈투트가르트 연극계는 애초 성인 대상의 문화에 집중했다. 그러다 지난 2000년 초부터 성인관객이 작품에 대한 심미안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수준에 맞는 다양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공공 책임론이 대두했다. 이에 따라 지역극단에서 활동하던 페터 갈카 씨 등은 슈투트가르트시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정부, 정치인들과 뜻을 같이해 2004년 5월 '슈투트가르트 청소년극단'을 창단했다.

100석 미만의 소극장, 250석 규모의 본 공연장, 인형극장 등 공연장 3곳은 물론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연습무대장도 별도로 갖춰져 있다. 배우는 3명이지만 기술, 교육, 무대, 극작가, 감독 등 정규직 스태프를 포함해 20명의 연극 전문가가 극단을 꾸려간다. 대형 작품을 만들 때는 연극배우를 외부에서 초빙하기도 한다.

브리기테 데티어(Brigitte Dethier) 극단장은 "어릴 때일수록 수준 높은 공연을 관람해야 하기 때문에 작품을 기획할 때마다 전 직원이 회의를 어려번 갖는다"며 "학부모와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연간 3만3천여 명이 극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동화, 소설책 등을 작품화하거나 1년에 4~5편의 창작품 등을 무대에 올리는데 기존 작품을 반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올해의 테마는 '낯선 세계'로, 최근 올렸던 어린이 연극은 양과 늑대의 만남을 그린 '인생을 위한 양 한 마리'였다. 본 공연장은 넓은 무대와 별도로 음악과 배경을 구성할 수 있는 공간과 최첨단 조명·음향시설을 자랑한다. 객석 간 간격이 넓고 계단식으로 배치돼 관객들이 시선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 편리하다.

포항에서 매년 국제연극제가 열린다고 하자 브리기테 데티어 극단장은 "우리극단도 초청해주면 언제든지 달려 가겠다"며 "국제적으로 다양한 교류를 갖는 것도 청소년 극단의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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