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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고대국가 '이즈모' 신라 일족이 일군 땅
日 고대국가 '이즈모' 신라 일족이 일군 땅
  • 진용숙기자
  • 승인 2009년 12월 27일 22시 35분
  • 지면게재일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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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세오녀 신화 한일 고대사 풀어줄 열쇠
오타시에 있는 한국 신라 신사. 신라와 관련된 인물을 모시는 신사로 국가지정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사진/ 김우수기자 woosoo@kyongbuk.co.kr

일본 고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신공왕후(神功皇后) 정한설이다. 교통이 어려웠던 그 시절 어떻게 우리가 모르는 백제·신라의 역사가 그렇게 자세히 실려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달라왕 20년(174년) 신라로 사신을 보낸 왜의 여왕 히미코는 세오녀와 동일 인물은 아니었을까.

이영희 교수(인재개발원)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신공황후가 히미코임을 알 수 있고 그 히미코가 곧 세오녀라고 분석했다.

이즈모타이샤를 찾은 참배객들의 바람을 적은 옆서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이 같은 주장을 간추려보면 '연오랑세오녀'는 포항 사람으로 당시의 제철기술 등 첨단기술을 일본에 전한 인물일 뿐 아니라 일본 고대 왕국을 건설한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이 교수는 또 '세오녀'의 '세'는 '쇠'의 고대표기로 볼 수 있다면서 세오녀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감에 따라 신라의 해와 달이 광채를 잃었다는 것은 제철기술자 집단이 일본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고로에 불이 꺼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 교수는 이같은 뛰어난 상상력과 한일고대사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담고 있는 깊이 있는 의미들을 끌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세오녀는 누구인가.

마쓰에시를 감싸듯 흐르는 호리카와 유람선.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제철기술 집단의 여성지도자가 된 사람으로 봐야한다는 것이 이교수의 주장이다. 포항의 고대지명은 근오기(斤烏伎)다. 북의 36도인 영일 근오기에서 똑바로 동쪽으로 가면 일본 오키섬에 가 닫는다. 또 곧바로 남하하면 일본고대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이즈모국에 가 닿는다. 이즈모는 이름난 철 산지였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철기기술을 전하고 비단짜는 기술과 농사짓는 기술을 전했고, 현재 그들이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일본 마쓰에(松江)시 교육위원회 지도강사 시니코리아키라씨는 "자신이 연오랑 세오녀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연오랑세오녀연구회를 조직, 50여명이 뜻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북일보 이즈모역사 답사·취재팀이 이즈모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연오랑 세오녀 동화 CD를 보여주며 크게 환영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그렇게 경외하는 한국신은 일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일본에는 10만의 한국 신사가 있다고 한다. 이렇듯 일본에 신사가, 그것도 같은 신을 모시는 신사가 많은 것은 신령의 분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씨로부터 불씨를 다시 얻는 것'처럼 본래의 신령을 받아 다시 다른 장소에 그 신을 모시면 똑 같은 효력을 지닌 신을 모신 곳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연오랑을 모시는 신사, 세오녀를 모시는 신사가 다른 곳에도 있으며 신라국 신사라는 이름이 여기 저기에 있다.

한국과 관련된 신사는 하치만 신사, 이나리 신사 등 10여곳이 넘지만 신라 신사, 백제 신사, 고구려 신사가 대표적이었다.

때문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문물을 전파한 이즈모시에 위치한 한국신사,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세오녀(히메고소) 신사위에는 새가 길을 안내해 준다는 솟대가 세워져 있다.

한국의 금줄과 유사한 금줄이 쳐져 있었다. 누군가가 쾌유를 빌면서 접어 줄로 엮은 학, 짚신 등이 한국의 성황당을 보는 듯 했다. 신과 인간의 세계를 연결한다는 금줄, 한국의 신목, 종이 오려붙이는 것까지 한국의 무속신앙과 그리 똑같은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스이닌천황 3년 신라왕자 아메노히보코, 오진천황 20년 야마토노아야노아타이와 그의 아들이 도래했다고 나온다. 이들 이야기는 결국 신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들이 분류하는 '우사하치만'의 신이 신라인들의 씨신이란 것이 주목되는 장면이다. 이처럼 일본의 신사는 결국 우리와 연결돼 우리에겐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즈모타이샤에서 승용차로 30분정도 가면 서해남단인 히노미사키가 있다. 너럭바위가 쭉 이어져 있는 이곳엔 등대가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 해안가를 따라 가면 마치 한국이 손끝에 닿을 것 같은 지점에 신사가 있다. 이곳의 신은 자신이 떠나온 곳을 바라보며 염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고대의 이즈모는 해양국가다.

우리 고어에서는 친척을 '아잠'이라 한다고 이영희 교수는 말한다. 이즈모는 이 '아잠'이 변해서 된 말이라고 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즈모는 신라인과 그의 일족이 개척한 땅이라는 것이다. 신라와 관계가 무척 깊다는 이야기다.

이즈모시와 마쓰에시 어딜가나 저마다 신사를 찾아 소원을 빌고 있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젊은 사람서부터 나인 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점심을 먹듯 저마다 신사를 찾아 지극한 정성을 드리는 모습은 일본인들의 신사에 대한 정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에는 사라진 세계의 문화 중에서도 한국의 문화가 그대로 전승돼 오고 있는 나라다. 신라국 신사에는 양력으로 매년 1월 11일 '달집태우기'가 행해지고 있다. 또 일본은 땅이 좁아 신라에서 많은 사람이 땅을 끌어왔으며 땅을 묶어 끌어 온 밧줄이 바다를 건너오는 높은 다리위에 끊어진 채 묶여있는 것을 보았다. 이는 전설을 형상화하기 위해 만든것이 아닐까하는 것이 니시코리 아키라씨의 말이다.

일본에 청동기와 철기 문명시대를 연 사람들, 그들은 곧 한반도인이었으며 한반도를 떠나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연오랑과 세오녀 신화. 그것은 바다를 건너 일본에 처음 문명을 일군 한반도인들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밝혀주는 이야기 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그것이 연오랑세오녀상의 역사적 의미와 그 속에 담긴 한일 고대사의 진실이 아닐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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