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측이 독도라는 문구를 빼지 않았으면 한일협정 서명은 안됐을 겁니다"

1963년부터 조약과장과 주일대사관 정무과장으로 한일회담에 참가했던 오재희(吳在熙.73) 전 외무차관은 회담 막바지까지 독도 문제로 배수진을 쳤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오 전 차관은 당시 회담 때 기본조약 및 어업분과위 협상에 관여했었다.

한일회담 간간이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쟁점화 하려 했으나 우리측은 독도 자체가 한일간에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는 게 오 전 차관의 전언이다.

그는 24일 "일본은 회담 초기인 1952년부터 독도문제를 꾸준히 들고 나왔다"며 "하지만 내가 아는 한 회담에서 독도문제가 거론되기는 했었어도 공식적인 의제로 다뤄지지는 않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런 과정에서 1962년 11월12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일본외상의 회동 등 일련의 한일회담에서 독도문제가 돌출됐다는 것이다.

오 씨는 '김-오히라' 회담에서 한국측이 독도문제 해결을 제3국 조정에 맡기자고 제안한 것에 대해 "일본이 계속해서 의제화를 시도하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시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독도문제가 공식의제화 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김 부장은 독도문제 해결을 제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고 제의했고 이같은 입장은 같은 달 19일 열린 제6차 회담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일본측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숨막혔던 순간은 5개 한일회담 문서가 가조인되고 본조인을 앞둔 상황에서 독도문제가 막판 걸림돌로 작용한 1965년 봄이다.

그는 "일본 제안으로 분쟁지역을 다루는 별도문서 작성을 했을 때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남겨두기 위해 '독도'라는 문구를 집어넣으려 했다"며 "우리는 이는 한일간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며 절대불가 방침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당초 '분쟁해결에 관한 교환공문'에 '..독도를 포함한 양국간의 분쟁은..'이라며 '독도'라는 문구를 삽입시키려 했다.

이에 우리측은 "국교정상화를 못하면 못했지 이런 내용에 서명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고 오 전 차관은 전했다.

양측은 그 해 6월22일 오후 4시에 본조인 서명을 한다고 이미 언론에 통보한 상태였고, 시계 바늘은 이미 예정시각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이동원(李東元) 외무장관과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외상의 이날의 마지막 담판도 불발로 끝나자 양국간 긴장은 극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자 사토 일본 총리가 결심한 듯 협정문 초안을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문서초안의 '독도를 포함한'이라는 문구를 펜으로 직접 그어버렸다.

오 전 차관은 "일본에서는 사또 수상이 아니면 해당 문구를 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다"며 "일본이 그 문구를 삭제하지 않았으면 협정자체가 서명이 안되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독도라는 문구를 뺀 것은 외교상의 정치적 결정으로, 일본이 향후 독도를 분쟁지로 거론안하겠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며 "일본은 협정조인 후 '독도문제 해결을 못보고 선반위에 올려놨다'고 언론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일본은 독도를 현안으로 남겨두려 하지만 우리는 독도자체가 거론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측은 독도라는 표현이 빠졌더라도 '양국간의 분쟁'에는 독도가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고 일본이 뺐으니 이는 끝난 문제라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