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소득 있으면 정부지원 못받아

한 밤 중 쓰레기더미 있는 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거기 누구요?…짐승인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 대구시 북구 대현동 경북대 정문 옆골목 한쪽 쓰레기집하장에는 일요일이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악취가 진동한다.

그때, 쓰레기더미 속에서 무엇인가 계속 꿈틀대고 있지 않은가. 인적도 없는 한밤중 궁금하기도 하지만, 고양이나 유기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겁도 났다.

그 다음 주 비슷한 시각. 같은 장소. 귀갓길, 전깃불도 없는 후미진 그곳에는 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는 더 이상 궁금증을 누르고 지나칠 수 없어 "거기, 누구요?"라고 소리쳤다. 한동안 대답이 없다. 필자는 다시 큰 목소리로 "거기 누구야!"라며 외쳤다.

그 때 쓰레기더미 속에서 괴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검은 보자기로 뒤집어쓴 키가 작달막한 노파였다.

순간, 온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어찌, 아무리 살기가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나는 그 노파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곧 알아챌 수 있었다. 목이 메여왔다.

정중하게 물었다. "노인은 어디 사십니까. 고물이 좀 나옵니까?"라며 말을 걸었다. 그래도 노파는 아무 대답이 없다. 이때 바깥의 부산한 소리를 듣고 이웃사람이 나왔다. "저 노파는 농아입니다"

나는 왈칵 치미는 감정을 누를 길이 없었다. 큰 소리로 물어본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먹고 살기 위해 이 깊은 밤, 악취가 코를 찌르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가련한 삶을 잇고 있었다. 그 이튿날, 그 다음날에도 그곳에서는 또다른 노인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대구시 북구 복현동 김모(58) 통장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동안 집안에 불이 꺼져 있는 정모(83) 할머니 집을 방문했더니 전기·수도세가 체납된 상태였고 연탄과 쌀이 떨어져 굶은 채 누워 있었다.

2개월전 수도권 도시에 사는 며느리한테 전화가 왔는데 쌀이 떨어졌다고 얘기했는데도 아직까지 전화 한 통화 없다며 며느리를 원망하고 있더라는 것.

김 씨는 이 할머니를 달래 동사무소에서 생활비를 타 쓰고 정부에서 아들한테 비용을 청구토록 할 것을 권유했으나 자식의 체면을 생각하느라 이마저 거부하고 말더라는 것.

대구시 동구 신천동의 박모(87)씨는 독립해 살고 있는 두 아들에게서 생활비를 타쓰다 부인이 별세하고 난 뒤에는 자식들이 생활비를 전혀 주지않고 있다. 박 씨는 한 주에 5일 간은 이웃에 있는 무료급식소에 가서 하루 두끼씩 얻어먹고 나머지 이틀간은 파지를 주워 번 돈으로 라면을 사 끼니를 해결한다고 한다.

박 씨는 최근 지병인 고혈압과 심장병이 악화되면서 파지수집을 못해 거의 굶어죽기 직전이라고 한다.

농아 노파와 박 씨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자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정부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고물수집도 경쟁이 치열해 박스나 공병 등은 젊고 힘 있는 사람들 차지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포대 등 고물은 노약자들에겐 돌아오지도 않는다.

출근길 도로에서는 파지와 고물 등을 손수레에 실은 노인들이 힘겹게 끌고 가는 것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이 노인들이 파지 등을 고물상에 팔아 버는 수입이 하루 평균 2천 원 가량이란다. 1천 원도 벌지 못하는 노인도 많다.

현행 기초생활보호법상 소득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정부가 생계비를 지원한다. 독거노인의 경우 기초수급대상자가 되면 소득의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평균 30여만 원의 생계비를 지원받는다.

그러나 독거노인이라고 할지라도 별거하는 자녀(사위 포함)에게 소득이 있으면 보호에서 제외된다. 이 제도는 공부상 소득이 있는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지 않을 경우 대책이 없다는 맹점이 있다.

대구의 경우 기초생활보장법이 규정한대로 부양 능력이 있는 자녀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나서 강제로 노부모를 부양하게 한 사례는 이 법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2009년 10월 남구에서 단 1건 뿐이다.

북구청 영세민 담당자는 "요즘 노부모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굶었으면 굶었지, 자식에게 망신줘가며 생활비를 받을 수는 없다고 한다"며 "현행법에는 부모 동의가 있어야 강제징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구제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필자가 대구에서 24년 동안 신문고라는 봉사단체를 운영해온 경험에 의하면 현행 노인보호정책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본다.

날이 갈수록 부모를 방치하고 학대하는 자녀가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어설픈 지원정책이 도리어 정부보호라는 구실을 주어 능력있는 자녀들마저도 부양을 꺼리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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