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 대구시립합창단 지휘자

대구를 환경 관련 종합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지난 1994년에 만들어진 한국환경노래보급협회. 이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박영호 대구시립합창단 지휘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포즈를 취했다.

대구를 환경 관련 종합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작은 씨가 발아했다. 지난 1994년 대구의 김황희 시인이 뿌린 '한국환경노래보급협회'가 그 씨앗이다.

현재 박영호(52) 대구시립합창단 지휘자가 이 씨앗의 싹을 틔워, 꽃과 잎을 내고 뿌리를 튼실하게 하는 농부로 자임하고 나섰다.

지난 20일 대구시 중구 서성빌딩 지하에 있는 한국환경노래보급협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환경노래보급협회란 어떤 곳입니까?

"1994년 대구의 새마을부녀회에서 활동을 많이 하신 시인 김황희 선생님이 환경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환경을 위한 시와 수필 등이 많이 있지만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여겨 여기에 노래를 붙여 환경운동을 하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지요. 지금은 작곡가, 시인(작사자), 연주가 등 30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습니까?

"협회 설립 후 1996년 첫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제가 KBS대구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로 있었는데 협회가 이 행사에 우리를 초청해 합창은 모두 우리가 연주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지구가 아프대요'라는 노래가 그 때 세상에 첫음 나왔습니다."

'지구가 아프대요'(김황희 작사/권태복 작곡)는 현재 초·중·고 교과서 12곳에 수록돼 있을 정도로 환경노래의 대명사가 됐다. 이후 협회는 KBS어린이합창단을 통해 환경노래들을 음반으로 제작했다.

"그 해(1996년) 여름방학 때 녹음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아이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간식을 먹다가 흘리고, 봉지를 아무렇게나 버리던 아이들이 '얘들아, 우리가 환경노래를 부르면서 이렇게 버리면 되나' '화장실도 깨끗이 쓰자'는 겁니다. 그 때 저는 환경노래가 정말 사람을 변화시키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랜드에코오페라합창단이 참여한 환경뮤지컬 '반디의 노래'.

인생이 바뀌는 '큰' 깨달음이었다. 그는 1999년말 성악 전공자 30여명으로 '그린환경합창단'을 조직했다. 지금까지 학생들 위주로 계몽차원에서만 불리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악을 전공한 '프로'들의 합창으로 환경노래를 예술로 승화시키자는 시도였다. 지금 이 합창단은 '그랜드에코오페라합창단'으로 이름이 바뀌어 한국환경노래보급협회의 핵심이 되고 있다.

2007년은 이 합창단에게 아주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노동부와 환경부의 지원금을 받게 돼 한국 최초의 환경뮤지컬 '반디의 노래'가 탄생하면서 환경노래는 합창에서 뮤지컬로 진입한 것이다. 게다가 합창단의 활동무대가 세계로 넓혀졌다. 세계 유일의 이 환경합창단은 가는 곳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경기도 과천 공연에서는 환경부 장관까지 와 격려했다. 중국의 한 합창단 지휘자는 한국에 와서 환경노래가 합창으로 연주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귀국 후 환경합창단을 만들기도 했다. 이른 바 환경합창 문화의 첫 수출이다.

'그랜드에코오페라합창단'이 활기를 띠게 되면서 이 협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성악전공자로 구성된 '그린환경중창단', 주부들로 구성된 아마추어합창단인 '비둘기환경합창단', 초등학생들의 '리틀그린환경합창단'까지 만들어졌다.

이 단체가 지금까지 내놓은 곡만도 현재까지 1천100여곡. 협회는 이 노래들을 책으로 만들고 CD에 담아 전국의 각급 학교에 보급하고 있다. 그리고 전국 환경합창제, 환경예술축제 등의 굵직한 행사들을 개최하고, 영어·일어·중국어로 된 환경노래를 세계 각국에 보내는 등 대구를 환경예술 운동의 세계적 중심지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정부지원이 올해로 끝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이 협회와 합창단을 어떻게 운영할 계획이십니까?

"합창단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2년 더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합창단이 국립환경합창단으로 승격되도록 환경부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운영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럴 기업이 있으면 아주 좋지요. 가령 포스코가 10년전 축구단 운영예산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오케스트라를 운영했더라면 지금쯤 세계적인 '포스코 오케스트라'가 돼 있을 겁니다. 전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기업홍보가 되는 것은 물론 기업이 문화활동을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 이미지 향상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지금은 연간 3천만원 정도를 후원하는 단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해도 응하는 기업이 없어요."

-그렇다면 과거 대우그룹 합창단이 해체된 데에 아쉬움이 크겠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휘자와 단원간의 불화로 그렇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에 있었는데 미국에서도 이 합창단이 화제가 될 정도로 세계 수준의 합창단이었는데 아쉽지요"

-대구의 KBS와 MBC에도 한 때 어린이합창단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걸까요?

"지난 1956년 국내 최초로 어린이합창단을 만들었다는 큰 상징성을 가진 대구KBS가 이를 중도하차한 것은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일은 아마 재정 문제 때문이 아니라 갈수록 학부모들의 관심이 멀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에는 지원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입시공부에만 매몰돼 이런 데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진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이라도 방송국들의 관심만 있으면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공부 외에 신경 쓸 여유를 가지지 않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정서가 메말라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환경노래경연대회에 출전하는 학생팀도 처음에는 40여개씩 되다가 상금을 1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올렸는데도 차츰 줄어 지금은 10팀 정도만 참가합니다."

-대구가 합창분야는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다던데 정말입니까?

"전국에서 대구 만한 곳이 없습니다. 인구비로 볼 때 합창단 수가 대구가 서울보다 많습니다. 전국 최고 수준이지요. 대구가 합창음악의 메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유명한 작곡가이면서 지휘자인 박태준, 현제명 선생이 모두 대구에서 활동하다가 서울로 가 합창문화를 확산시켰습니다. 뮤지컬이나 공연 인프라 역시 마찬가집니다. 대구의 공연장 수를 유럽 사람들에게 얘기하니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얘기 나온 김에 대구에서 뮤지컬 축제와 오페라 축제를 따로 하는데 이제는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산도 훨씬 많이 줄일 수 있고 외지인의 여러작품 관람도 편해집니다. 지금 상태로는 외지인이 대구에 와 1박 2일동안 1개의 작품밖에 보지 못합니다."

-어떻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유치원에 다닐 때 진주 MBC에 간 적이 있어요. 라디오 동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어떤 아이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내가 따라하니 그 아이의 지도 선생님이 저보고 노래를 해보라고 해서 했지요. 이후 매주 그 프로에 나가게 됐는데, 원래 집안이 음악 가족입니다. 아버지가 목사이시고 우리 형제 4남4녀가 모두 음악을 전공했습니다. 가족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합창이 나옵니다."

초등학생 때 합창단에 들어가면서 그의 본격적인 '합창인생'이 시작됐다. 중학생(경운중) 때는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을 하고, 고등학교(대구사대부고) 때는 20~30명으로 합창단을 만들어 지휘를 맡았다. 계명대 성악과에 진학해서도 대구 경북 목회자 자녀들로 또 합창단을 만들었다. 대학생 시절 대구의 유명한 할렐루야 합창단에서 테너파트장을 맡았다가 지휘자가 유학가는 바람에 지휘를 이어받기도 했다.

그는 '마태 수난곡'을 감상하다 지휘하던 헬무트 릴링에게 매료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에게 지휘를 배우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릴링에게서 2년 반을 배운 후 미국 뉴멕시코대로 건너가 석사학위를 받는 동안 흑인영가 등의 미국합창에 심취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992년 귀국해 한국성가협회합창단, 대구KBS 어린이합창단, 울산시립합창단 등을 맡았다가 지난 1999년 대구시립합창단 4대 지휘자가 됐다. 그리고 지난 2008년 다시 이 합창단의 7대 지휘자로 위촉되는 특이한 경력을 가지게 됐다.

이와 함께 지난 2006년에는 직장인 남성들로 아마추어인 '카리스 합창단'을 만들었는데 창단 5개월만에 전국 합창대회에서 대통령상으로 1천만 원의 상금을 받아 이를 가지고 400벌의 내의를 사서 노숙자들에게 모두 나눠주기도 했다. 또 지난 해 여름에는 '나눔과 기쁨'이란 봉사단체(반찬 봉사)의 단원들로 합창단을 만들어 합창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수많은 합창단의 지휘를 맡고 해외 연주도 여러번 하셨는데 한국과 외국 관객들간 차이가 있습니까?

"대구시립합창단이 지난 달 독일과 프랑스에 초청받아 갔습니다. 프랑스의 루앙이라는 소도시에 갔었는데 이 곳에서 '유로 트렌스'라는 세계다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도시에 전 세계에서 매년 1천명이 넘는 예술인들이 찾아온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의 관람태도에 정말 놀랐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1시간 동안이나 공연을 했는데 너무 조용했어요. 어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마 한국의 아이들이라면 몸을 뒤틀고 떠들고 돌아다니고 했을 겁니다. 합창 후에는 우리 단원들이 사물놀이 공연을 했는데 아이들이 신기한 듯 악기를 두드려보기도 하고 적극 참여하는 거예요. 정말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존중과 관심의 정도에 우리 단원들이 더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문화적 소양이 우리의 입시교육 위주의 풍토에서는 기대하기 힘들지요. 우리 합창단이 학교 순회 공연을 많이 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합창이라는 것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지만 학생들에게 훌륭한 청중이 되도록 하는 교육을 하기 위한 취지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작게는 현재 '생명의 숲', '환의 노래' 뮤지컬을 제작 중인데 이를 성공적으로 공연해야겠고, 오는 9월에는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을 염원하는 '2010명 합창단'을 만들겁니다. 아마추어와 프로 모두 합쳐 2천1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합창단이 탄생합니다. 크게는 '그랜드에코오페라합창단'을 합창과, 뮤지컬, 오페라 공연을 모두 하는 환경문화예술단으로 만들어 대구가 환경예술의 메카가 되는 데에 일조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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