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들어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정부 지원없이 방치

대구시 동구 노인 원스톱지원센터 허창주 복지사(간호사)가 박홍규 어르신 댁을 방문, 혈압을 체크하며 건강을 돌봐주고 있다.

"복지라는 말이 우리한테는 사치스럽게 들립니다.", "세끼 밥 굶지 않게라도 해 주면 원이 없겠습니다.", "정부에서 생계비 지원받는 노인들은 부자로 살지요." 기가 막힌다. 이 노인들의 '한'을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언론보도나 입소문만으로 어찌 독거노인들의 고통을 실감할 수 있겠는가? 대구시 동구 노인 원스톱 지원센터의 안내로 비수급 독거노인을 찾아가 보았다. 박홍규(88·가명·동구 신암동) 어르신은 홀로된 지가 8년째다.

"자식들 다 공부시켜 짝지어 보내고 조금 모아 놓은 돈으로 내외가 걱정 없이 살았는데 내자가 그만 암에 걸려 고생하는 바람에 돈을 다 써버리고 집 한 채만 남게 되었지. 그때 첫째가 찾아와서 집을 정리하고 같이 살자고 하기에 혼자 밥을 해먹기도 힘들고 해서 집을 팔고 합쳤는데 처음 몇 달 동안은 꼬박꼬박 용돈을 챙겨 주더니 일 년도 안 돼 돈이 떨어졌다고 하면서 용돈을 주지 않는거야. 자식한테 섭섭했지만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지병인 천식이 도져 자꾸 기침을 하니까 며느리가 방문도 열지 못하게 하는거야. 거실에 나오는 것도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자식 내외한테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같이 살수는 없어서 그 길로 한강으로 달려갔지.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까 부모를 자살케 한 불효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자식들의 모습이 어른거려. 그래서 내 맘대로 죽지도 못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오."

―대구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요?

"집을 나와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둘째 아들이 대구에 살고 있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둘째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가 심하고 직장을 얻지 못해 열쇠를 수리하면서 결혼도 못하고 혼자 근근이 살아가는데 나까지 내려와서 짐이 되고 있으니…, 죽기보다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오."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둘째가 매달 방세를 주고 쌀을 팔아 줘서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반찬은 고추장 하나만 있어도 되니까 물에 말아서 하루 두 끼를 먹어요. 누가 도와줄 사람이 있습니까? 자식도 정부도 외면하는 노인을…, 가끔 정부에서 불우이웃돕기 성품이 나와도 우리한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정말로 아무도 도와주지도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몹쓸 천식 때문에 약값을 마련하려고 파지를 주우려 나가보면 어떤 젊은이도 양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파지를 줍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하고 잘못 가져왔다간 큰 봉변을 당해. 요 근래에 와서는 동구 노인 원스톱지원센터에서 복지사와 돌봄이 아줌마가 번갈아 찾아와서 반찬도 갖다 주고 집안일도 돌봐주면서 도움을 받도록 주선해줘서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모릅니다."

―제일 아쉬운 게 뭡니까?

"늙고 병들었으나 죽지 않고 있으니 사는 날까지는 먹어야 하고 몸이 아프니 병원에도 가야하는데 돈이 없으니 답답하지요. 반찬은 없어도 좋으니 쌀만이라도 안 떨어지게 해주고 아플 때 병원 가면 의료비라도 도움을 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이 주저리주저리 털어놓는 한탄에 목이 메였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소득기준이나 부양의무자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다. 비수급 독거노인들은 실제로는 기초수급자(국가에서 생계비 지원을 받는 극빈자)보다 더 빈궁한 삶을 살지만 국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65세 이상 노인이라도 사위가 일정한 소득이 있으면 혼자 사는 장모는 기초수급을 받을 수가 없고 거동이 불편하고 소득이 전혀 없는 노부모라도 18세 이상 자녀(미혼, 미취업 불문)와 같이 살면 수급자가 될 수 없다. 폐가에 가까운 고가로 아무 소득이 없어도 자신의 소유인 경우는 재산(동산, 부동산)총액이 5천400만원을 초과하면 수급자에서 탈락된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라도 장애등급을 받지 못하면 경차(티코)만 소유해도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심각한 노인문제해결을 위해선 관련법을 현실에 맞게 고치고 당장 굶고 있는 노인들을 위해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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