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수(사회부차장)

"선수의 축 처진 어깨를 어떻게 다독여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제48회 경북도민체전에 참가한 전제효 상주시청 사이클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 감독은 전날까지만해도 국가대표선수이던 '여자 사이클 간판' 손희정이 도민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대표팀에 사직서를 제출한 기막힌 사연을 털어놨다.

오는 11월 중국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영주경륜훈련원에서 훈련하던 손희정이 18일 경주 안강읍민운동장에서 열리는 도민체전 사이클에 출전하기 위해 태극마크를 반납해야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희정의 도민체전 출전을 탐탁지 않게 여긴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가고 싶으면 사직하고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국내 1인자인 손희정은 대표팀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광저우아시안게임 출전 희망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운동선수라면 최고의 목표라 할 수 있는 태극마크와 아시안게임 출전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대한사이클연맹은 다음달 대표선발전을 열어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를 확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손희정에겐 선발전 출전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 발로 나간 선수를 대표팀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손희정은 사이클연맹 내부의 파워게임 희생양이 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연맹 회장이 선거에 의해 교체되면서 신구 임원들의 주도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손희정이 엉뚱하게 희생됐다는 시각이다. 소속 선수들을 한명이라도 더 대표팀에 넣으려는 감독들의 욕심이 낳은 비극이다.

경북사이클연맹 전무인 전 감독은 대표선수 훈련 스케줄을 감안해 도민체전 일정을 휴식시간인 일요일에 맞춰놨다. 손희정이 일요일에 도민체전을 뛴 뒤 대표팀에 복귀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일요일이라도 숙소에서 벗어나면 이탈하는 것이라며 전 감독과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이때부터 전 감독은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전 감독은 상주시청이 한해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팀을 육성하는 입장에서 소속 선수가 도민체전에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국가대표선수라도, 도민체전에서 월등한 기량차이가 나더라도 시청에서 출전을 원한다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손희정은 무난히 도민체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이클 외에 사실상 1등 종목이 없는 상주시청 관계자들은 안도했다. 만에 하나 손희정이 '태업'이라도 한다면 큰일이었지만 전 감독의 설득으로 손희정은 최선을 다해 선수단에 금메달을 안겼다.

손희정이 소속 팀에 합류하자 대표팀에 남아있던 동생인 은주도 '감독님, 저도 더 이상 국가대표하기 싫어요'란 문자 메시지를 띄워 전 감독의 상심이 더욱 깊어졌다. 언니가 대표팀을 억울하게 떠나자 동생도 급격히 의욕을 상실했던 것.

"제가 힘이 없어서 여자사이클의 간판으로 활약해 온 희정·은주 자매의 앞날이 어두워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는 전 감독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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