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강동면 유금리 '부농' 권병준·김달막 부부

맨손으로 부농을 일군 권병준 씨 부부가 경운기를 타고 일터로 나가고 있다.

9월인데도 여름은 뭐가 아쉬운지 그 긴 끝자락을 접지 않고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은 이 여름이 힘들었지만, 들판의 벼에게는 살찌기 좋은 햇살이어서 모처럼 걸어보는 들길 옆, 고개 숙인 벼이삭들이 튼실해 보인다.

권병준 옹(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을 추천한 최경석 사장이 들길 한 곳에 멈춰섰다.

"이 논이 그 어르신의 논입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다른 논의 벼들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벼이삭이 마치 수숫대궁이처럼 축축 늘어진 것이… 아마 올해에도 이 어르신의 벼가 일등일 것입니다"

말을 듣고 보니 다른 벼보다 이삭이 훨씬 굵고 길어보인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농사를 잘 짓는 분이지요. 6천평 되는 논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부인과 둘이서 하면서 늘 곡수를 제일 많이 내거든요. 저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그 어르신을 도저히 못 따라갑니다."

최 사장은 권병준씨를 만나기로 한 자신의 농막으로 필자를 안내하면서 칭송이 흐드러진다. 경운기에서 내려 최 사장의 농막으로 들어오는 권 옹의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자수성가한 농부의 여유가 느껴진다.

-물려받은 땅도 없이 혼자서 어떻게 그 많은 논을 장만하셨습니까?

"그때는 이 동네가 침수지역이라 다른 곳보다 값이 쌌어요. 그리고 동네에 논이 나오면, 내가 논이 없으니까 친구들과 동네분들이 돈을 빌려줘 가면서 논을 사게 했지요. 그때는 일 년 세경 12가마니 받으면 그걸로 논 다섯 마지기를 살 수 있었지요. 다 그 분들 덕분이지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는데 학교는 어떻게 다니셨는지?

"내가 집안의 종손이라 할아버지도 신경을 많이 쓰시고, 삼촌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삼촌들 덕분에 그때 동지상고를 나온 것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 시절 상고 나오시면 은행 같은데 취직하실 수 있었을텐데.

"그랬지요. 그런데 그때는 시험을 보지 않고 알음알음으로 들어가던 때라 그쪽으로 아는 사람이 없으니 취직할 생각을 못했지요."

-농사는 언제부터 지으셨습니까?

"허허 젊어서는 놀기 좋아하고, 남의 농사도 좀 지었지만 그때는 요즘처럼 농사짓는 사람이 많이 못 받았지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 것은 한 오십되어서 였습니다. 그때는 내 땅에 농사짓고 땅 사 모으는 재미도 알고 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여기 최 사장님한테 많이 배웁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농법은 책보고 연구하는 젊은 사람들 따라갈 수가 없지요."

최 사장이 손사래를 친다.

"아이고 무슨 말씀, 저가 어찌 어르신의 경험과 정성을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책은 그냥 기본적인 지식이고, 토질도 다 같은 것이 아니라서, 그 땅에서 농사를 잘 짓는 것은 경험과 사랑이지요. 내가 아무리 새벽 일찍 들에 나가도 이 어르신은 이미 나와 계시거든요. 허리를 다쳐 수술했을 때도 들에 나오시지요. 논물 관찰이 남다르고, 논에 물을 대고 빼는 것이 정확해서 항상 소출 일등하시는 분이니까요."

-농사 잘 짓는 방법이 있다면?

"농사는 애기 기르는 것이나 같아요. 항상 돌보고 물이나 비료가 적당한지 잘 살펴야 되고, 정치나 경제나 나락 농사도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살펴야 되지요, 밤에 누워 있어도 어느 논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환히 보입니다."

-앞으로 농토를 더 살 생각이신지.

"아닙니다. 농사일이라는 것이 능력껏 해야지 욕심을 내면 안 되지요. 지금도 안식구가 많이 힘들어 해요. 아들이 도와주지만 직장생활 하니 한계가 있고. 인제 농기구를 마련해서 좀 수월하게 농사지으려 합니다. 그래도 정미기는 안 삽니다. 나락 찧으려 도정공장에 가야 친구들 만나서 술도 한 잔 하고 농사짓는 이야기도 하는데, 집에 그것이 있으면 그 재미가 없어지거든요."

건강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 아직 얼마든지 농사일을 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인다. 맹자는 "잘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했는데 농사일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그의 얼굴에 씌여 있다. 천직처럼 농사일을 즐기면서 해내는 권병준 어르신 부부. 여생을 자신의 논에 탐스럽게 영근 벼알갱이처럼 건강하고 알차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며, 노부부의 성실한 삶에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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