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련 사랑의 재봉틀 봉사단 단장

문승련 사랑의 재봉틀봉사단 단장은 암 선고를 받은 후 20년을 꼬박 독거노인 등의 생활한복과 수의 등을 지어주며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대구 남구 이천동 한복연구소에서 만난 문 단장.

암을 불치병으로만 알았던 20년 전 문승련(56)씨에게 닥친 암 선고는 '청천벽력'이었다. 그녀는 당시의 절망적이던 상황을 떠올린 듯 말문을 열면서 긴 한숨을 몰아쉰다. "그때는 암에 걸리면 다 죽는 줄 알았지요. 저는 한동안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종교적 신념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지요. '생사는 하늘에 맡기기'로 하고 죽는 그날까지 제가 꼭 하고 싶었던 봉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암은 문 씨의 인생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1990년 암 선고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일했다. 그리고 제자들을 설득해 재봉틀 봉사단을 만들고 실의에 빠진 노약자 2천여 명에게 생활한복을 지어주고 고령의 독거노인들에게는 400벌의 수의를 만들어 주면서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한편으로는 가난한 실직 여성들을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한복 제작기술을 무료로 가르쳐 10년 동안 수많은 여성들에게 자활의 길을 터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선행을 본받게 했다. 딸 김나영(36)씨도 어머니의 뜻에 감동, 결혼 후에도 희생적으로 어머니를 도와 지금까지 큰 힘이 됐다.

오늘 필자가 만나본 문 씨는 너무나 건강했고 행복해 보였다. 중병을 앓은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문 씨가 건강을 회복한 것은 필자가 보기에는 그녀가 '마음을 비우고 적극적으로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얻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재봉틀 봉사단을 소개해 주세요.

"제가 2000년에 대구 중구에서 '사랑의 재봉틀 봉사단'을, 2008년에는 남구에서 '행복의 재봉틀 봉사단'을 창단해 제자들과 손잡고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제가 발병 후 다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봉사란 반드시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낭비적인 것은 더욱 아니며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가 있고 인생에 이보다 더 의미 있고 유익한 일은 없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념을 가지고 제자들을 설득해 지금까지 60명의 단원들이 남을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덕을 닦는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단체 이름만 들어도 짐작하겠지만 우리 단원들 중에는 재봉틀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도 있고 75세의 노인도 있으나 봉사 하는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재봉틀봉사단은 지금까지 노약자들에게 생활한복과 수의 등을 만들어 주었을뿐만 아니라 종합복지관에서 받은 강의료 283만9천원, 기타 수익금 30만원을 불우이웃돕기로 내놓기도 했다.(제작품 중 단체생활복, 수의 등은 해당 관내에서 원단을 지원받아 제작했음.)

-대구에서 최초로 부녀자율방범대를 창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2000년에 대원 28명으로 방범대를 조직해 10년 동안 방범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습게 보던 주민들도 있었으나 여성의 강점을 살려 야간에 방치된 청소년을 다독여 귀가 시키고 기소중지자를 검거하는 등 남성들이 못하는 방범 역할을 함으로써 이제는 주민들로부터 크게 환영 받고 있어 대원들의 사기가 대단합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던데.

"한복전문학교를 설립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편리한 한복을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한복을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합니다. 실직자들의 자활을 돕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 단장은 남구 이천동에 문승련 한복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의 여건으로는 마음껏 뜻을 펼 수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 문 씨의 초인적인 투병생활과 봉사행적에 경의를 표하며 사회에 이바지한 혁혁한 공로로 국방장관상(2009년), 대구시장상(2007년)을 수상한 사실도 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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