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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베풀 때 더 예의 갖춰야 참 봉사"
"남에게 베풀 때 더 예의 갖춰야 참 봉사"
  • 홍종환 명예기자
  • 승인 2011년 01월 06일 00시 21분
  • 지면게재일 2011년 01월 06일 목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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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대현동 허만용씨
허만용씨

"남에게 후하고 자신에게는 인색한 타고난 덕인 노인을 돕는 일 장차 자기를 위하는 일 아닐까요"

그는 언제나 선행을 감춘다. 그래서 대담을 허락 받는데도 여러 날이 걸렸다.

"봉사는 작게 하고 소문은 크게 내면 그건 죄를 짓는 겁니다. 제가 봉사한 것을 남에게 알리면 도움 받은 사람은 부끄럽게 되지 않겠습니까? 작은 것이라도 진심으로 도와야지요."

그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귀하의 선행을 세상에 알려서 더 많은 불우이웃을 돕자고 간청하는 필자의 권유를 끝내 뿌리치지는 않았다. 남몰래 봉사하라는 성현의 말씀도 진의는 과시하지 말라는 뜻이지 미덕이 세상에 귀감이 되는 것을 막자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설득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허만용 씨는 일일선행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는 특별히 날 받아서 봉사하지 않는다. 날마다 하루 한 가지 이상 좋은 일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봉사를 거창한 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수레에 무거운 짐 실은 노인이 오르막을 오를 때 뒤를 좀 밀어주는 것도. 힘들게 살아가는 노약자들을 찾아가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남을 위해 늘 봉사를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선 약값도 아낄 정도로 인색하다는 소문이 있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궁금한 게 많습니다. 남들은 작게 봉사하고 크게 알리려고 애를 쓰는데 왜 선행을 숨기려고만 합니까.

"약자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환자에게 약을 주면서 병도 함께 주는 경우와 같습니다. 과시하려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예의를 갖추어야 참 봉사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도와 줘 놓고 수치심을 준다면 도움의 의미가 실현되겠습니까? 우리가 남을 도울 때는 도움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가족들의 의식주 관리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무슨 뜻이 있나요.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의식주를 그들의 수준에 맞춰 사는 것은 편하게 사는 하나의 방법이지요. 밖으로 드러나는 의식주가 지나치면 이웃에서 미움을 사서 자연히 불편해 집니다. 이웃과 화합하려면 먼저 의식주 생활에서 거리감이 없어야 합니다. 가진 것 과시하면서 소통과 화합을 강조해도 효용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막내아들이 고급 신발 얘기를 들려주었다.

막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고급 신발을 사 달라고 떼를 썼다. 어느 부잣집 아이가 비싼 신발을 신고 와서 뽐내고 다녀 속이 상한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네가 친구의 비싼 신발을 보고 부러워서 속이 상했다면 너까지 그렇게 해서 많은 반 친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좋겠느냐고…, 사랑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애를 써 이해시켰다"고 한다.

-독거노인들한테는 너무나 고맙게 하셨습니다.

"저는 대구 신문고 회원입니다. 자식들도, 정부에서도 부양하지 않는 가련한 노인들을 돕는 것은 신문고 회원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한평생 자식들과 나라를 위해 헌신해온 지금의 노인들이 호강은 고사하고 양식마저 떨어져 굶고 있으면 얼마나 억울한 생각이 들겠습니까? 정부에서 이 노인들의 생계를 챙겨 드릴 때까지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십시일반으로 도와드려야 합니다."

대구 신문고에서는 설립 취지에 따라 IMF 이후로 양식이 떨어진 독거노인들을 찾아 줄곧 도와 왔다. 한 번은 신문고에서 쌀을 나눠 주다가 떨어져 그를 찾아 갔는데 불행하게도 그날은 거래처에서 크게 부도를 맞아 낭패를 당하고 있었다.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라 그냥 돌아왔는데 봉사인은 그 이튿날 부족한 쌀을 모두 보내와 굶고 있는 수십 명의 노인들에게 쌀을 보내드릴 수 있었다. 그는 회원들이 고맙다고 인사하자 "내가 부도 당한 것보다 당장 양식이 떨어진 노인들이 더 절박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해 회원들을 감동케 했다.

그는 10여 년 전 마을 주민들의 권유로 관변 단체장을 맡았을 때도 관변단체가 해야 할 일은 관에서 미처 못한 일을 돕는 것이라면서 관내에 생존하신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찾아 위문하고 매년 두 차례씩 식사를 대접하고 위로금을 드려 흐뭇하게 했으며 주민들에게는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한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쌀을 보낼 때는 일등미를 사주고 자신은 하등품을 사 가지고 가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으며 자신에게는 한없이 인색하면서도 노약자들에게는 일일 선행을 실천하고 있어 그의 미덕은 진정한 봉사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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