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능래 한림원 원장

조능래 원장이 남계서당에서 다음주 문화원에서 가르칠 천자문의 글귀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정년퇴임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다. 퇴임 후 지내야 할 세월이 너무 길기 때문에 아무 계획없이 직장에서 떨어져 나오면 사람들은 줄 끊어진 연처럼 갈팡질팡 막막하게 된다. 그런데 조능래 한림원 원장은 39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나오자 곧바로 한학과 한시공부를 해서 퇴직 11년째인 지금은 장성동에 있는 침촌문화원에서 한문을 가르치면서 인성교육도 하고 있다.

그의 자택 2층에 마련되어 있는 남계서당의 서가에는 그가 전국 한시백일장에서 받은 상장들이 50여개나 꽂혀 있어 그동안 얼마나 한학과 한시에 물두했는지 말해 준다. 그는 한시 외에도 서예 시조창 등도 공부했고, 함안 조씨 종중회장을 4년간 맡아하며 주례도 서고, 작명 택일도 해주고, 혼인때 예장지 등도 써주는 일들로도 바쁜 시간을 보낸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방문한 남계서당에서 그는 다음 주에 문화원에서 가르칠 천자문의 글귀를 쓰고 있었다. 푸근해 보이는 선생의 모습과 단아한 글씨체가 어우러져 선비의 방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한문반 교재를 준비하시는 것입니까? 한문반에서는 어떤 것들을 가르치시는지요?

"주로 천자문을 중심으로 뜻풀이를 하고, 그 글자에 관련된 단어들을 공부하고,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중에 그 글자가 포함되어 있는 말들도 찾아서 제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루에 천자문은 여덟 글자 씩 배우는데 두 시간이 빠듯합니다. 이외에 명심보감도 요즘 세태에 맞게 재 해석해서 공부합니다"

-한림원 원장이신데 한림원은 어떤 곳입니까?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요. 한학이나 한시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지요. 유도회(儒道會)나 일월시역회(日月詩易會)에서 시와 주역을 배운 사람들이 모여서 사서(四書)와 한시도 공부하고, 시제를 정해 각자 지은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시 평가도 하고 나름대로 공부에 취미가 있고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늙을수록 머리를 쓰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몸이란 것이 길들이기에 달렸으니 많이 써야 건강해지지요"

- 상장이 많은데 주로 어디에서 받으신 것인지요?

"전국적으로, 지역별로 한시 대회나 시조창대회가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경복궁에서도 근정전 앞에서 일 년에 한번 한시 대회가 열리는데 거기도 참가했지요. 꼭 상을 받겠다는 것보다 나 자신의 한시 실력을 테스트해 볼 기회라는 생각으로 자주 참여합니다. 거기서 입상권에 들어가면 내 한시가 그래도 좀 어디에 끼일 수는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지요. 그런 대회에서 받은 상들입니다"

조원장은 상 받은 한시들을 모아서 언젠가 책을 내어볼 계획으로 원고를 모아놓고 있다.

-서예, 한시, 시조창도 하시는데, 어떻게 이런 여러가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까?

"처음에는 서예를 했는데 하다 보니까 내가 무슨 문장을 썼는지 뜻도 모르고 써는 경우가 있어 한시를 배웠고, 한시를 엮어놓고 보니 읊어보고 싶어 시조창을 하게 되었지요.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 전문분야가 없이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어요."

겸손하며 말하며 웃는 그에게서 마음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는 한동대 평생대학에서도 한문학과를 수료했고, 포항문화원 한문반 강사를 역임했다. 그의 명함 뒷면을 가득 채운 직함들만 봐도 그가 얼마나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한시나 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 말고도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아 '동해지구 풍수연구회 부회장'이라는 직함도 가졌고, 교사 재직시 모범공무원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평생을 재산을 모아보겠다는, 요즘 말하는 재테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이 선비정신으로 맑게 살아온 조원장은 늙을수록 책을 많이 보고 다양한 취미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는 평소 세가지를 지키며 산다고 했다.

예(禮) 도덕적으로 예에 벗어난 일을 하지 않는다.

경(敬) 조상 섬기기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다.

신(信)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들로부터 신용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오늘날 예절이나 도덕,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나, 서로에 대한 믿음, 사회에 대한 신뢰성이 땅에 떨어진, 이 인성(人性)부재의 시대에,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데 일조를 하는, 이런 어른들이야말로 이 각박한 시대가 필요로 하는 귀한 원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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