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른이 돌아가셨다 가마솥이 마당에서 끓고 돼지를 잡아 삶았는데 이놈 삶은 돼지는 키득키득 웃고 있다 아버지는 돼지의 웃음을 다치지 않게 썰고 있다 소주 한 잔 벌컥 들이켜며 웃음 한 조각을 먹는다 캬! 죽을 때는 요런 표정으로 죽을 수 있을까 접시마다 귀도 웃고 코도 웃고 눈도 웃고 있다 동네분들과 문상객들이 낄낄낄 돼지 웃음을 먹고 있다

감상:죽음을 슬퍼하는 까닭은 죽은 너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내 자신의 연민이 너에게 휘감겨 솟아올라서, 나의 가련함이 너를 통해서 한 순간 온 몸에 스며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만 놓아버리면 너의 죽음 앞에서 소주 한 잔 들이키며 웃음도 포식할 수 있으리니. 조신호(시인)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