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국 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장

안동미술협회와 경북미협 등에서 예술행정 활동을 거친 뒤 지난해부터 (사)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이병국(51) 회장을 만나 경북 문화예술의 현주소와 지향점을 들어봤다. 이 회장은 전통문화의 기반이 잘 보존돼 있는 지역특성을 잇고,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나간다면 개성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문화예술이 경북에서 꽃 필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회장으로서 지역 예술행정을 총괄하면서도 본업인 창작활동이 왕성하고, 다양한 사회활동까지 하고 있는 그는 무엇보다 의욕적이었고 확신에 차 있었다.

△ 경북의 문화예술 수준, 현주소는 어떤가?

-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 수준은 잠재적으로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상주 출신의 원로화가 성백주, 청송의 김주영, 영양의 이문열, 영주 출신의 홍익대 학장 이두식, 봉화 출신 영화감독 김기덕 등이 문학과 미술, 연예, 영화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밖에도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세계를 구축한 좋은 작가들이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예술인들의 응집력이 미약하다는 사실이다. 대구만 하더라도 우수한 예술가들이 각각의 단체를 구성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이는 대구라는 물리적 공간의 테두리 내에 예술가들이 함께 살아가며 작품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경북의 경우 23개 시군이라는 각각의 지역에서 흩어져 작품활동을 하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와 함께 정서적으로도 뭉치기가 까다로운 조건이다. 더구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개성이 강하기 마련이어서 응집이 쉽지 않다. 나와 같은 예술행정가들이 해야 할 역할은 바로 예술가들을 최대한 설득하고 이해시켜 응집함으로써 작가들이 스스로 권익을 찾을 수 있도록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우리 지역 문화예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뚜렷한 개성이나 특징은 있는가?

- 경북 예술은 사실주의적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교와 불교가 동시에 융성했고 그 문화가 아직까지 잘 전승되고 있으며, 다른 일반적 전통문화도 잘 보존돼 있다. 따라서 지역 작가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기본적으로 전통문화가 기반하고 있고, 이런 이유에서 사실주의적 작품경향이 나온다. 현대예술은 그림이든, 연극이든 추상적인 경향이 짙기 마련인데, 우리 지역은 전통의식의 기반에서 출발하다보니 현대예술에서도 사실주의적 표현이 하나의 큰 특징으로 나타난다. 실제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추상적 경향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흔한 말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하는데, 우리 지역의 특징을 살린 예술작품은 얼마든지 한국을 대표할 수 있고 세계적인 것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지역이 가진 역사적, 정신적 자산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노력이 계속될 것이다.

△ 작년 3월 취임한지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동안 거둔 성과는?

- 자평한다면 활발한 창작과 정보공유가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을 들고 싶다. 전국단위 예술단체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그들과 활발한 교류를 함으로써 지역 작가들에게 자극과 도움을 동시에 주려고 노력했다. 특히 영호남 예술교류는 어떤 측면에서 정치권이 하지 못한 일을 예술계가 해냈다고 자부할 수도 있을 듯하다.

영호남 교류를 통해 전북과 경북은 국악과 성악, 연극, 미술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전시회 및 공연을 서로 나누고 있다. 대구 예총과도 MOU를 체결했는데 광주와 전북, 대구와 경북 4개 광역단체 예총 지회장들이 1년에 4차례 정도 만나 허심탄회하게 교류방안을 논의하고 실천에 옮긴다. 중국 하남성 등 외국 예술인들과의 교류도 이어가고 있다.

△ 예총 경북연합회장이면서 전업 미술작가인데 두 가지 일이 부딪히지 않나?

- 미술작가로 활동하면서 예술단체나 관련 조직을 무시하고 혼자 발전을 이루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이런 맥락에서 한 사람의 작가가 정열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은 개인적 성취도 되지만 궁극적으로 단체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작가이자 예술행정가의 두 가지 일은 다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일일 뿐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2000년부터 안동미협 활동을 시작했는데 회원들에게 혜택과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에 만족하면서 작가로서도 게으르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 단체의 행정을 처리하려면 창작시간이 모자라지 않나?

- 시간은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 공평하게 주어진다. 문제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점이다. 나는 예총지회장으로 있으면서 창작량이 줄어든 적이 없고, 중요무형문화재인 차전놀이 이수자로 활동하며, 좋아하는 운동도 부족하지 않게 즐기는 등 시간을 무궁무진하게 활용하고 있다.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나가면 시간이 모자란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 그림을 그린 동기와 추구하는 작품경향은?

- 초등학교 시절 사생대회 등에서 많은 상을 탔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시상대에 오르면 우쭐했고, 스스로 그림에 재능과 재미를 느껴 만화까지도 포함해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지금 나이에 이르도록 한시도 그림과 멀어진 적이 없을 만큼 천직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림 자체를 즐기고 있다.

최근 내 작품의 경향은 이전 유화 중심에서 수채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채화는 유화에 비해 작품을 제작하는 시간이 덜 든다는 점에서도 나에게는 유리하고 매력적이다. 유화는 채색 후 말리는데 길게는 10시간도 들지만 수채화는 금세 마르기 때문이다. 그림의 소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풍경들이다. 나무와 산, 시골집, 언덕길, 바다 등 모든 소재는 작가에 의해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고 재조명된다. 최근 내 작품의 화두는 이처럼 자연형상의 재창조이다.

△ 경북 북부지역 출신 최초로 경북예총 수장이 됐다.

- 그동안 경북 예총 사무국은 경주와 구미, 포항을 오가며 도내 큰 도시 위주로 이끌어져 왔던 게 현실이었고 내가 지회장을 맡게 되면서 처음으로 안동에 자리를 잡았다. 회장이 누구냐에 따라 예총 사무국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던 셈이다.

사실 예총 정관상 사무국은 도청 소재지에 두도록 돼 있다. 2014년 도청 신청사 입주가 예정이니까 앞으로 경북 예총 사무국은 안동에 상주하게 됐다. 경북 예총으로서는 떠돌이 생활을 마감하고 정착한다는 점에서 한 획을 긋는 것이고, 안동시민들로서는 예술단체가 상주함에 따른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 2014년까지 남은 임기 동안 나갈 방향은

- 경북 예총 산하에는 8개 도단위 협회가 있고, 11개 시군 지회가 있으며, 정회원 수가 5천600여명에 달한다. 조직의 규모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앞서 말한 8개 도단위 협회와 11개 시군 지회가 예술문화 단체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연합회장이 앞장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항상 다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단체의 최대 숙제는 응집력을 모으는 것이다. 문화원의 경우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있지만 예총은 수평적이다. 태생적으로 수평적인 단체문화 속에서 회원 모두가 예술가로서 각자 개성적인 창작활동을 하기에 단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예술인은 각자 개성이 강해야하며, 각자가 구축한 예술세계를 감상하다보면 개성이 강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집행부는 예술인들에게 창작과 관련한 혜택과 기회를 부여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기본적인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금, 전업 작가가 최소한의 생계걱정 없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등을 조성해야하는 숙제 말이다. 이것을 위해서 예술인의 단합된 목소리가 필요한 것이다. 남은 임기 동안 단체 회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순수 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을 확보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쏟고자 한다.

또 경북 예총의 역사가 반세기를 맞은 만큼 그 동안의 역사를 총람이나 연감 등의 형태로 정리하는 작업도 내가 안고 있는 중대 사업이다. 50년의 세월 동안 선배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정리하는 작업은 그것대로 필수적인 과제이면서, 이 정리 작업을 통해 지역 예술의 나아갈 방향도 설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병국 회장은

- 안동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 안동미협, 경북미협 지회장

- 22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 사)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장

- 한국미술협회 지역미술발전위원회 위원장

- 중요무형문화재 사)차전놀이보존회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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