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철 디지스트 총장 인터뷰

신성철 디지스트 총장

국내 최초의 무학과(無學科) 대학의 꿈이 움트고 있다. 오는 2014년 개설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디지스트 학부과정이다. 학과가 없는 대학 운영이 가능할까? 그런데 실제로 현재의 디지스트 대학원 과정도 사실상 무학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른바 융복합 학제다. 이처럼 디지스트는 국내 어느 대학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모험적인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 수준의 연구·교육기관으로 자리잡는다는 계획이다. 디지스트 신성철 총장에게서 디지스트의 '꿈', 디지스트와 관련된 현안, 그리고 지역민들이 궁금해 하는 관심사항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다.

-총장으로 오신 지 3개월 정도 되셨는데 그동안 살펴본 디지스트의 약점과 강점은 무엇인가?

"디지스트는 카이스트(KAIST)보다 40년 늦게 출발했다. 당연히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이 있다. 하지만 앞선 기관의 장단점을 분석해 우리에게 유리할 수 있도록 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카이스트 발전위원장을 담당한 경험이 있다. 카이스트는 그 전통과 역사가 큰 강점이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반면 우리는 이제 출발단계로 백지에다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때문에 훨씬 빠른 시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여기와서 느낀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정주여건이다. 대중교통도 없고 교육·문화 등 정주 기반 시설이 전혀 없어 학생과 유능한 연구원·교수 유치에 어려움이 있다. 3, 4년 정도 지나면 이같은 문제는 많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에도 김천이나 대구역에서 바로 올 수 있는 길을 빨리 뚫어 달라고 요청해 놓았다"

-디지스트는 국립기관이기에 지역과의 연계가 많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많다. 지역과의 관계를 밀착시키기 위한 방안은?

"와서 보니 예상 외로 지역민과 기관들이 '디지스트가 대구의 마지막 희망'이라며 우리를 도와 주려는 분위기가 아주 강하다. 대구상공회의소 이인중 회장께서는 기꺼이 디지스트 발전위원장을 맡아 주셨다. 김범일 시장과 하춘수 대구은행장께서도 여기에 참여해 많은 신경을 써 주신다. 발전기금 조성에 많은 기대가 된다. 기금이 많이 쌓이면 외부에서 석학 등 중요 인사를 모시고 올 때 큰 도움이 된다. 지역 대학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책 프로젝트도 따 와서 서로 연계할 것이다. 조만간 총장님들을 모시고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싶다. 최근 대구의 병원장들을 모시고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대구의 첨복, 뇌연구원 등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다. 디지스트는 지역에서 이같은 지역발전을 위한 중개자 역할도 할 것이다. 또 지역의 이공계 우수 인력을 흡수해 인재로 양성해 지역 우수 기업에 공급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지역 기업에 애로기술을 해결해주는 역할도 충실히 할 것이다."

-디지스트 운영방안으로 융합 교육·연구를 강조하시는데 그 이유는?

"예를 들어 뇌과학의 경우 전통적으로 의학분야다. 하지만 뇌의 이미지 촬영같은 것은 영상·정보 분야며 이를 분석·진단하는 데에는 통계, 뇌의 매커니즘을 연구하는 데에는 물리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즉 뇌과학에는 물리, 생물, 수학, 정보 등 여러 분야가 필요하다. 학문간의 벽이 있으면 이같은 통합적 연구는 힘들다. 21세기 기술혁명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학제가 불가피하다"

-2014년부터 학부생을 모집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부 교육과정도 융합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그렇다. 기존의 학과 구분이 없다. 학생들은 3년 동안 물리, 화학, 수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을 배우고 4학년에는 전공별로 심화된 학문을 접하게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과학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 기업가 정신, 외국어, 인문·사회적 교양에서부터 태권도, 악기까지 의무적으로 배우게 된다. 이런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작지만 강한 대학'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학부생 모집 규모와 특징은?

"200명 정도로 등록금은 전혀 없다"

-카이스트 등 일부 대학들에는 과학고 학생들이 2학년만 마치고 진학한다. 문제가 있지 않은가?

"과학고 2학년 학생들의 진학은 문제가 많다. 최근 카이스트에서 자살을 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2학년 마치고 진학한 학생들이다. 고교에서 프라이드가 강했던 학생들이 대학 입학 후 서열에서 약간 미끌어지면서 패배의식을 갖게 되고 결국 자기관리에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계 고교 학생들의 진학도 적극 권장한다. 우리 대학이 강조하는 리더십은 과학고보다는 일반계고 출신 학생들의 소양이 더 탄탄하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원인으로 영어수업에 대한 부담감, 징벌적 등록금제 등이 거론됐는데 디지스트에서는 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징벌적 등록금제는 우리는 도입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낙제는 있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전면 영어수업은 문제가 있다. 개념 전달에 실패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들이 영어 수업 늘이는 것을 국제화로 착각하고 있다. 우리 것을 외국에 심는 것도 국제화다. 또 한국어를 논리적으로 잘 말할 수 있어야 영어도 잘 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국내 대학들의 교육에도 문제가 많다. 이들에게 영어로만 가르치고 한국어는 하나도 모른 채 모국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래서는 이들이 한국을 잘 이해할 수 없고 당연히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깊이 가질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외국 학생들에게 마지막 단계에서는 한국어로 수업을 하게 할 것이다"

-카이스트에서는 학생들의 고민들을 들어줄 시스템이 없는가?

"상담실도 있고 정신과 의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상담을 한다. 하지만 상담을 하러 올 정도의 학생이면 정상이라고 봐야 한다. 디지스트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학생들에 대한 보다 면밀한 관찰이 가능해 카이스트에서와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연구중심대를 너무 강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교수 채용시 연구보다는 교육을 더 강조한다. 미국 캠브리지대의 경우 학기중 교수가 학교를 72시간 비우지 못하게 한다.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들은 연구 열병에 걸려 교육을 등한시 하고 있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사건도 이런 분위기와 관계 있다"

-뇌연구원의 대구 유치가 확정적인 것 같다. 이 기관 유치로 대구가 얻을 것은 무엇이며, 이 기관의 성공을 위한 조건, 대구가 도와야 할 것은 무엇인가. 또 이 기관을 디지스트가 있는 현풍의 테크노폴리스에 두지 않고 멀리 떨어진 대구 동구의 첨단의료복합단지에 설립하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뇌연구원 유치와 관련, 오는 6월 1일 현장실사가 예정돼 있는데 대구 단독 신청이어서 유치가능성이 높다. 이 기관이 유치되면 대형 연구시설들이 들어온다. 이같은 고가의 연구시설들은 지역 병원에서는 구입하기 어렵다. 뇌연구원의 시설을 함께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지역 병원들의 기초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 기관이 국내에서는 유일하기 때문에 대구가 국제적으로도 뇌연구의 허브가 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다. 뇌연구원이 유치될 경우 임상병원도 함께 설립할 필요가 있다. 뇌연구원의 위치는 주관기관이 디지스트이기 때문에 이곳 테크노폴리스에 있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대구가 유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입지를 첨복으로 명시해 놓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국제과학비스니스벨트 입지 발표 때 정부는 1조5천억원을 대구 디지스트 포항의 포스텍, 울산 유니스트에 투자한다고 한다. 그럴 경우 디지스트에는 어떤 기관이 와야 하고 세 기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본원이 안 와서 아쉽지만 10개 정도의 연구단이 우리 지역에 배치된다. 여기에 필요한 1조5천억원이면 엄청나다. 디지스트의 중점 분야에서 세부과제를 도출해 연구단장으로 세계적 석학을 모셔오려고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외국인 석학이어야만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뽑는 '젊은 과학자상' 수상자들을 보면 과반수가 국내 대학 출신들이다.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그만큼 상당하다는 것이다.

신성철 총장은

△경기고, 서울대 응용물리학과, KAIST 대학원 물리학과, 미국 노스웨스턴대 재료물리학과 졸업 △KAIST 물리학과 석좌교수·기획처장·부총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국제협력부장, 한국자기학회 회장, 한국물리학회장(2010~) 역임 △과학기술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1999) △과학기술부 및 과학문화제단 선정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10인'(2007) △미국물리학회 '펠로(석학회원)' 선정(2008) △학술원상(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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