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문화유산 알리미 역할 '톡톡'
경주 문화유산 알리미 역할 '톡톡'
  • 이정희 명예기자
  • 승인 2011년 05월 25일 23시 24분
  • 지면게재일 2011년 05월 26일 목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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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덕 시조시인·前 울산 대현중학교 교장
전치덕 시조시인·前 울산 대현중학교 교장.

경주 남산 자락 아늑한 곳, 그냥 보기에도 공기 좋고 평화스러워 보이는 곳에 잘 지어진 황토집이 있다. 집안을 들여다 보면 잘 생긴, 윤이 나는 큰 장독들이 마당을 채우고 있고 잘 가꾸어 논 푸성귀며 손이 많이 간 듯한 꽃들이 맞춤한 자리에 피어 있다.

전치덕 전 울산 대현중학교 교장선생님이 부인 서말순여사와 함께 사는, 직접 지은 집이다. 전교장이 이 나이까지 문화재해설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취재차 찾아갔는데 그는 작년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전교장은 작년 3월달에 목욕탕에서 넘어져 4시간 만에 깨어났다고 한다. 보통 젊은 사람들도 의식을 잃고 40분이 지나면 뇌가 마비되기 시작한다는데 그는 그 나이에 기적같이 멀쩡하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가 이 나이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을 부인의 공으로 돌린다.

그는 이 일이 있기 전, 88세까지도 지방 신문에 칼럼을 쓰고, 문화재해설을 했으며, 남산을 매일 정상까지 올라다녔다. 지금도 정상까지 가려면 갈 수는 있겠지만 조심을 하느라고 남산을 오르지는 않고 주변길을 매일 한시간 30분씩 걷는다.

그는 울산에서 교직에 있을 때부터 자신의 일에 열성적이어서, 숙직실에서 숙식하면서 아이들을 공부시켰다.

전 교장은 13년 동안 월급을 집에 하나도 안 가져다주면서까지 아이들에게 투자해서 시골 작은 중학교에서 어느 도시의 큰 학교 못지 않은 진학률을 기록했다.

전교장은 진정한 교육자는 아이들의 아픈 것까지 살펴 고쳐줄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침술을 배워 아이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의 이런 열성과 노력은 그를 그 학교의 교장을 거쳐 이사장직까지 맡게 했다. 그의 침술의 효험은 소문이 나서 교장을 하면서도 교장실인지 환자방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무료로 봉사했지만, 지금은 침을 놓을 수 있는 자격을 주지 않으니,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침을 놓아주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

-문화재해설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나는 경주에 문화재해설사라는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나 혼자 공부해서 사람들에게 해설을 해주었어요, 내가 경주에 이사와서 경주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살펴보니 시골이나, 먼 타 지역에서 큰 마음먹고 경주에 오는 사람들이 문화유산의 겉만 대충 보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 공부를 해서 해설을 해 주었지요. 그렇게 한 2년 하고 있는데 정식으로 신라문화원 시니어클럽에 문화유산해설사를 양성하는 과정이 생겨 거기에 1기로 들어갔지요. 그때 내 나이 팔십이었어요."

-시조시인으로 등단도 하셨다지요?

"예, 그것은 70살 때입니다. 그래서 문화재해설사 반에서 답사 다니면서 그때마다 시조를 써 회원들에게 나누어주고 했지요"

-울산에서 경주로 이사를 오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내가 울산에 있을 때부터 경주 토함산과 남산을 한 6백번 정도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경주에 정도 들고 더 늙어서도 다닐 수 있는 산을 찾아보니 경주 남산이 적격이었어요. 물도 좋고 공기도 좋고 해서 아예 남산 밑에 황토집을 지었습니다"

-마당에 된장독이 많은데 된장을 하시게 된 동기는요?

"제자가 개인박물관 연다고 모아두었던 것을 여기 갔다 놓았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된장 파는 집이냐고 자꾸 물어요. 그런데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농사짓고 일을 하는데 우리만 뻔히 일 안하고 있기 민망했는데 마침 안식구가 된장을 담는 손맛이 좋다는 말을 들어왔고 해서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시작한 것이 사업이 되었지요.

된장은 안식구의 사업이고 나는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그래도 된장 팔아서 돈은 모두 나한테 줍니다. 나한테 참 잘 합니다. 아이들도 잘 하고 ."

이 나이까지 건강하고 부인이나 자식들이 다 잘 하니 노년에 이 보다 더 좋은 복이 없다. 20여년 전 호주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갔을 때 교민들에게 침을 놔 주어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돈을 받지 않자 그 사람들이 안내를 해서 관광을 시켜주었다고 하며, 열 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그 호주에 지금도 갈 자신이 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도 그렇게 쓰러져 의식을 잃고 나면 후유증이 있는데, 이렇게 건강하시니,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요?

"그때 넘어져 누워 있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요. 죽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편안한 것이구나, 싶었어요. 지금 이 나이에 죽음도 두렵지 않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침구사 자격이 합법화되어 전국을 다니면서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딱한 사람들 침 놔주면서 봉사하고 싶습니다."

죽음에 대한 의연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무언가 해보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는 89세의 건강한 노옹, 평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올곧고 강건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복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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