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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 이익에 양심을 팔수는 없죠"
"눈앞 이익에 양심을 팔수는 없죠"
  • 이정희 명예기자
  • 승인 2011년 06월 09일 00시 01분
  • 지면게재일 2011년 06월 09일 목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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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대구할매전복집 이선옥 할머니
포항 죽도시장 대구할매 전복집 이선옥 할머니.

우리는 식당 간판이나 먹거리에 관해서 할매집이라는 이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것은 할매가 주는 느낌이 제대로 된 깊은 맛과 친밀감, 남을 속이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은연중에 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포항 죽도시장에도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대구할매 전복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할머니가 있다. 올해 76세의 나이지만 죽도 시장에서 제일 일찍 나오고 제일 늦게 들어가는 할머니로 유명하다.

이선옥 할머니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주변에서 고아원에 보내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삼 남매를 혼자 힘으로 대학까지 시켜서 지금은 자식들이 좋은 직장을 가지고 제 몫을 하며 살고 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전복을 팔면서 가게의 이층에서 혼자 산다. 자식들은 그만 두고 쉬라고 하지만, 아직 장사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늘 하던 일을 하면서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젊을 때부터 아끼고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을 안 먹던 것이 습관이 되어 요즘도 장사가 안 된 날은 끼니를 거르기도 하면서 열심히 일만 하다가 며칠 전에는 영양실조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는데, 필자가 방문한 날 막 퇴원해서 바로 가게에 나왔다. 가게를 임시로 지키고 있던 딸이 들어가 쉬시라고 해도 가게가 애가 쓰여 진득하니 쉬지를 못하는 성격이라 이것저것 살피고 챙긴다. 잘 드셔야지 건강해서 일도 하시고 자식들 걱정도 안 시키는 것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이 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힘들여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다.

-전복은 언제부터 파셨습니까?

"오래 되었지요. 한 이십년 넘었습니다. 아이들 아버지 돌아가고 처음에는 식당을 했는데 잘 안 되어 그만두고 해녀들 가져오는 전복 한 두 마리 받아 그냥 팔아봤는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갔네요."

-장사하시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겠습니다.

"요즘 불경기라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지요. 빚지고 장사 그만 두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도 단골들이 있으니까 어려울수록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 시장 깡패들이 할머니의 가게에 들어와 행패를 부릴 때 같이 칼 들고 맞서서 싸울 만큼 기질이 세고 당차지만, 속 마음은 여리고, 선견지명이 있어 자식들에게 일찍이 운전과 영어를 배우게 했으며, 글자를 모르면서도 셈은 빨라 장사를 잘 한다고 옆에서 딸이 귀띔했다.

-장사 하시면서 원칙이 있으신지요?

"손님한테 잘해주고, 나쁜 것 안 주고, 남 눈 속이는 짓은 절대로 안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못 팔아도 빚은 안지고 살아야 하고. 아들도 '욕심 부리지 말고 엄마 몸 생각하고 손님들한테 잘 해주라'고 부탁합니다.

할머니는 이 죽도 시장 바닥에서 좋은 물건 양심적으로 파는 할머니로 알려져 단골손님이 많다고 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일 좋았던 일은요?

"젊은 시절엔 아이들 키우며 정신없이 사느라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나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지요. 그래도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대학교에 가서 장학금을 받았을 때 좋았고, 큰 아들이 여러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오라고 해도 안 가고 돈 많이 벌겠다고 고집부리다가, 결국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정말 좋았지요."

할머니에겐 요즘 자랑거리가 하나 생겼다. 서울에 있는 손녀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옛날 고생했던 생각을 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할머니가 자랑스런 손녀 말을 하며 비로소 얼굴이 환해진다.

-앞으로 계속 장사를 하실건지요? 편히 지내실 수도 있으실건데…

"팔십이 되든 구십이 되든 내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은 장사를 계속할려고 합니다. 나를 찾아오는 단골손님들 생각하면 인정상 그만 둘 수가 없지요.

-손님들한테 바라는 것이 있으시다면요?

"밑지고 팔 수야 없지만, 그래도 내 안 밑지고 손님 손해 안 보이는 선에서 적당한 값에 파는데, 손님들이 우리를 좀 믿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별로 남기는 것도 없는데 자꾸 한 마리 더 넣어달라고 떼를 쓰면 안 줄 수도 없고….

새벽 4시면 시장에 나와 밤 아홉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76세의 할머니, 이런 더운 날, 땀을 흘리면서도 얼굴에 푸릇푸릇 남아있는 추위에 언 자국은 혼자서 어렵게 자식들을 키워낸 훈장이다.

적게 판 날 먹을 거 다 챙겨 먹으면 빚 진다며, 먹는 끼니조차 아까워 영양실조에 걸리면서까지 일하는 할머니에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어 전복을 사는 손님들이 "할매 그 쪼그만 거 한 마리 더 넣어주이소"라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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