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ㆍ보훈의 달 - 보훈 도우미 박순임씨

비록 5년째 만남이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세상의 어떤 모녀보다 따뜻하다. 박말분 여사가 보훈도우미 박순임씨의 손을 잡아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미 이들은 웃는 모습도 닮아가고 있다. 김락현기자

"이제 나는 다 늙었잖아. 내 몸 아픈 것은 상관없지만, 네가 아프면 안돼"

모처럼 집을 찾아온 50대의 딸을 향해 여든살을 넘긴 노모가 슬쩍 던진 한마디였다.

딸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아이고, 같이 건강하게 오순도순 살아야죠"

노모와 딸은 닮았다. 뽀얀 피부에 순한 눈매가 비슷하다. 깔끔떠는 성격도 똑같다. 하지만 박말분(85)여사에게 딸 박순임(51)씨는 아픈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니다.

순임씨는 '보훈도우미'다. 지난 2005년 이 제도가 생기면서부터 이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어머니와는 2006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박 여사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막내 딸이 순임씨를 보낸 것이라고 믿고 있다. 6·25 전쟁으로 잃은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1남 2녀 가운데 유난히 자신을 챙겨주던 효녀 막내딸이 세상을 등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임씨를 알게 됐다. 순임씨가 막내 딸과 같은 손길로 자신을 챙겨준다고 귀띔했다. 달랐던 종교까지 하나로 바뀔만큼 사이가 깊어졌다.

충북 영동에 살던 박 여사는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다. 15살에 시집온 그는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시부모와 자식들을 먹여 살렸다. 몸이 아픈 시어머니 병간호와 자식 뒷바라지, 그리고 농사일까지 하기에 그의 몸은 너무 가냘펐고, 힘에 부쳤다. 죽을 결심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얘기 도중에도 지그시 눈을 감고 한숨을 여러번 내쉬었다. 그때마다 다시 힘을 준 것은 자식들이었다. 대구에서 자리 잡는데 도움을 준 지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그의 아들도 자신이 거두었다. 보은(報恩)의 마음과 함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알기 때문에 결정한 일이었다.

남아있는 2남2녀의 자식 가운데 순임씨가 가장 많이 박 여사를 찾아온다. 집도 제일 가깝다. 지금 살고 있는 달성군 화원읍의 방도 순임씨와 함께 골랐다.

순임씨 역시 자신을 딸이라 불러주는 박 여사를 '친정어머니'로 생각한다. 어릴적 일찍 어머니를 여읜 순임씨는 도우미 일을 할 때마다 친정집에 왔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두 번,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떤 피붙이보다 끈끈한 인연이 됐다. 열 가정의 보훈도우미를 맡고 있는 그는 9명의 든든한 친정 어머니가 있다.

혼자서 밥먹기를 싫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일부러 남아서 밥을 먹기도 한다. 가끔은 투정도 부리지만 둘 사이는 표정이나 행동만으로도 어떤 기분인지 알아 맞출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모녀지간에도 아직 해보지 못한 꿈이 있다. 5년동안 나들이 한번 제대로 떠나지 못했다. 무릎이 불편한 어머니는 기동력이 필요하지만, 순임씨는 운전면허가 없다.

딸이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함께 김밥 같은 음식을 준비해 나들이를 떠나고 싶어요. 올해는 가까운 대구수목원이라도 꼭 가보려고 합니다"며 말하자, 박 여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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