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ㆍ보훈의 달 - 박외연 할머니와 이경자 보훈도우미

박이연 할머니는 글씨를 쓸 때의 집중력은 대단하다. 이경자 보훈도우미는 박 할머니가 수십년동안 글씨를 썼기 때문에 치매도 걸리지 않고, 100세가 넘도록 정정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yongbuk.co.kr

참빗으로 빗은 머리에 고운 '은색 비녀'를 꽂은 할머니가 자신의 방 한 켠에 있던 교자상(交子床)을 방 가운데로 옮겼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상 앞에 앉았다. 잿빛 승복바지를 입은 할머니는 손목에 수십알이 엮인 염주를 감고 있었다.

할머니는 A4용지 한 장을 상 위에 펼쳤다. 검은색 사인펜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나무본사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는 글씨를 쓴다기보다는 그리는 듯 했다. 먼저 쓴 글씨를 보고 베끼는 것 같았다. '나'자는 'ㄴ'을 쓴 뒤 가운데에 'ㅣ'를 내려 그었다. '사'는 'ㅏ'를 먼저 쓰고 'ㅅ'을 나중에 채워 넣었다.

할머니는 사인펜을 꾹꾹 눌러가며 글씨를 썼다. 용지 한 면을 채우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주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도 잠시 눈을 딴 곳으로 돌리거나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 열 여섯자는 '까막눈'인 할머니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글자다. 수십년 전 한 스님이 '업장소멸(業障消滅·자신의 업보를 지우고 마음을 청정하게 닦는다는 의미)' 하라며 가르쳐 준 어귀다.

"6·25 전쟁터에 간 아들이 생각날 때 마다 이 글자를 써. 밤이고 낮이고 머릿속에 아들이 떠오를 때 마다 말이야. 언제부터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글씨를 쓸 때만큼은 여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 잡생각이 없어져"

대구 서구 비산동 박외연 할머니. 올해 백 하고도 세 살의 나이다. 스무살을 갓 넘긴 아들은 60년이 넘게 돌아오지 않았다. 다 쓴 종이는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 보냈다. 날려보낸 종이만 수천 장이 넘는다.

이경자(51) 보훈도우미는 박 할머니를 2년 넘게 보살펴 왔다. 쉰 살을 넘긴 나이지만, 할머니에게는 손녀뻘이다. 쾌활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이씨와 다소곳한 '천상 여자'인 할머니는 잘 맞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할머니의 소원은 자신의 고향인 성주에 작은 절을 짓는 것이다. 수 년동안 고생하며 아들 앞으로 밭 1천980㎡을 구했는데 거기에 절을 지어 '보시'하고 싶다는 것. 이씨는 '절을 지을만한 땅도 아니고, 절 짓는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든다'며 투덜대지만, 내심 할머니 생전에 그 소원을 이뤄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여의치 않지만 방법도 찾고 있다.

이씨는 할머니를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 특히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엄마가, 아내가 잘해야 집에 걱정거리가 없어진다는 내용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마흔도 되기 전 세상을 떠난 남편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큰 딸 얘기를 가끔 꺼낸다고 했다. 그 때마다 내색은 안하지만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업보때문에 가족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하고, 글씨를 쓰세요. 아직도 아들이 돌아올 거라고 믿으세요. 아마 할머니도 알고 계시겠죠…"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유독 '아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몇 해전 이씨의 아들의 혼삿날 '적지만 보태라'며 묵묵히 돈봉투를 건네준 적도 있다. 우연히 이웃집을 찾아 온 누군가의 '아들'을 본 날엔, 평소보다 기도도 많이하고, '나무…'글씨를 열심히 쓴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남에게 베푸는 할머니의 마음은 이씨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할머니의 단칸방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동 주민센터 근처에 있다. 또 차량통행이 잦은 큰 골목길 바로 옆에 있다. 대문도 항상 열려 있다. 여든을 훌쩍 넘겼을 아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박 할머니와 이씨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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