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이·미용장 가족 반대 무릅쓰고 공부 매진, 10여년 도전끝에 기능장 합격

포항시 대이동 슈슈미용실 김명희 대표.

"목표가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미용을 시작한지 25년만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미용실기방면 박사과정을 이루어낸 슈슈미용실 김명희(55·사진) 포항시 대이동 대표.

그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배출한 이·미용장이다.

강원도 삼척에서 꽤나 보수적이고 완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난 김씨는 학창시절부터 미용이란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옛사람들이 인식하는 미용이란 생계형이었기 때문에 감히 말도 꺼낼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친정집은 현재 강원도 지정 문화재로 등록될만큼 알아주는 집안이었으니 속앓이만 했다.

"미용은 정말 매력적이다" 하루도 이 생각을 잊어본 적 없이 결혼까지 하게 된 김씨는 결혼 후 29세가 되던 해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차라리 컴퓨터 학원을 차리라고 했지만 자신은 미용을 하고 싶어 병이났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면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자 결국은 남편이 먼저 손을 들었고 어른들도 차례로 승낙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김씨는 아이를 어른들에게 맡긴 채 유명하다는 미용사를 찾아다니며 1:1특강으로 미용 전반에 대해 공부를 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서로 다짐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미용이 과학이란 원리를 깨달은 김씨는 일본의 유명 미용학원에 베이직 과정을 신청하고 1년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1년만에 기술 습득이 안돼 2년으로 늘려 오직 미용만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귀국 후 기능장 공부에 매달렸다.

서울을 오르내리며 칼라리스트 과정과 그에 필요한 공부를 병행하면서 사람마다 다른 머리모양이 과학이란걸 깨달았다고 한다.

공부에만 몰입하기 위해 미용실 문을 잠근 채 손에 지문이 닳고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매달렸으나 1년에 두 번 치러지는 기능장 시험에서 다섯번을 내리 낙방한 후 포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인 2006년, 여섯 번째 시험에서 합격했다. 기능장 시험에 매달린지 3년만이다. 그리고 2년 후인 2011년 상반기 이용장에도 합격했다.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목표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는 그는 지금도 소외된 곳을 찾아 월 6~7군데 봉사활동을 펼친다. 앞으로의 꿈은 창의적인 연구를 거듭해 자신만의 미용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동안 노력한 시간이 매우 소중하다"는 걸 문득문득 느낀다는 김씨는 "지금도 시간날때마다 사람 머리의 생김새와 각도를 공부한다"며 어느 분야든 최고를 달리는 사람은 노력이 90%이상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미용이 과학이란걸 알아줬으면 하는 것, 후배들에게 듣고싶은 말은 미용의 원리를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말이라고 한다.

봉사활동, 시험공부 때문에 실시했던 예약제가 5~6년만에 정착되면서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트부터 샴푸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그는 자신을 찾아준 손님이 가장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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