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철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 교수

김정철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 교수

그의 모발이식을 받기 위해 3년 6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그에게서 모발이식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세계적의 의사들이 찾아오는 의사가 대구의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 김정철 교수다.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환자들이 밀려들면서 이 센터는 대구의 외국인 의료관광 1번지가 됐다.

금요일인 지난 22일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에서 김정철 교수를 만났다.

경북대학교병원 김정철 교수시술사진

-의대(경북대)에 진학하셔서 수많은 분야 중 모발 이식에 대해 연구를 하신 이유가 뭡니까?

"원래 기초의학 분야인 생화학과 면역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1982년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당시에는 이 분야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연구비와 연구 기자재가 많이 들었습니다. 힘이 들었지요. 그래서 돈 되는 연구를 해야겠다고 맘 먹었습니다. 피부와 관련된 연구를 했는데 여드름, 무좀 치료제 등과 함께 발모제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지요. 특히 남자는 왜 머리가 빠지고, 수염은 왜 그렇지 않은지, 머리카락은 왜 머리 앞부분에만 빠지는 지 등이 궁금했습니다. 유전자 발현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90년대 초반부터 대머리 유전자를 찾겠다고 뛰어들었어요"

이렇게 해서 그가 2007년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 DKK-1이라는 탈모유발인자다. 이 유전자가 유독 남성 머리의 앞부분에 많이 분포돼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밝혀내면서 TG-H7이라는 발모제도 개발됐다. 그런데 동물실험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했지만 사람에게는 그렇지가 못했다.

"효과는 분명히 있는데 문제는 이 발모제를 피부에 바르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모발이 자란 이후에는 모발때문에 이 발모제가 머리 피부에 제대로 닿질 않아요. 그래서 현재 발모제를 피부에 효과적으로 침투시키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모발 이식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원래 모발 이식술은 1954년 미국에서 개발됐습니다. 자신의 모발을 떼 내 한 구멍에 여러 개씩 모 심듯 심었습니다. 90년대 초 우리가 이를 적용해보니 환자들의 불만이 많았어요. 보기가 싫다는 것이었지요. 서양인들은 대부분 한 구멍에 2~3개씩의 모발이 자라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구멍에 1개씩 자라는 것이 46%, 2~3개씩 자라는 것이 54%입니다. 여기에 착안해 92년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 모낭군 이식술입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자신의 다리를 보여준다. 이 시술 방법을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 성공한 증거물이다. 자신의 모발을 다리에 심었는데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가 개발한 모낭군 이식술 절차는 이렇다. 먼저 정상적으로 모발이 있는 머리 뒷부분의 두피를 폭 1.5센티 길이 14센티 정도로 도려내고 이 부위는 당겨 봉합한다. 다음 도려낸 부위를 1~3개씩의 모발 단위로 세로로 잘라 모발이 없는 부위에 심게 된다. 봉합 부위는 몇 달 후 거의 표시가 나지 않게 되고 새로 심은 모발은 튼튼히 자란다.

-이 방법은 미국이 개발한 방법과 어떻게 다릅니까?

"미국이 처음에 개발한 것은 펀치 식모술이라는 겁니다. 이 방법은 이식한 모발이 칫솔모처럼 부자연스럽고 두피가 울퉁불퉁해 환자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모낭군 이식술은 두피에 존재하는 기본 단위인 모낭군을 그대로 옮기는 방법이어서 보기 좋고 자연스럽습니다. 모발이 굵고 직모이면서 검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이지요. 그리고 지금 미국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먼저 두피에 구멍을 낸 다음 한 사람이 두피의 구멍을 핀셋으로 벌려주고 다른 사람이 모발을 심어야 하기 때문에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더 걸립니다"

김 교수가 개발한 모낭군 이식술로 모발을 이식할 경우 한 번에 심을 수 있는 모발 수는 약 3천~4천개, 시술 시간은 3~4시간 정도. 미국에 비해 훨씬 빠른 이유 중 하나는 김 교수가 개발해 특허까지 얻은 식모기 덕분이다.

이른바 'KNU(경북대학교) 식모기'라는 것으로 주사바늘처럼 생겼다. 보조자가 가는 홈이 있는 식모기의 바늘 끝에 모발이 1~3개씩 단위로 잘려진 모낭군을 핀셋으로 끼워 주면 시술자가 이를 받아 두피에 콕 누르면 모발이 심어진다. 보조자와 시술자의 손동작이 아주 재빨라 시간당 1천~1천500개씩 심을 수 있다. 1개를 심는데 평균 3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계 최초로 모낭군 이식술을 개발한 김 교수는 이 공로로 1994년 국제모발학회 대상을 받았다. 그의 나이 만 36세 때로 아시아인 중에서는 최초였다. 2003년에는 이탈리아 모발이식학회에서 마일스톤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는 국제적으로 유명인사가 돼 2000~2006년에는 국제모발외과학회 상임이사를 맡았고, 그가 2004년 집필한 미국의 모발이식술 교과서는 지금 전 세계 모발이식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지금 그의 모발 이식술을 배우기 위해 선진국인 미국, 독일, 일본은 물론 전세계 20여개국 50여명의 의사들이 다녀갔다. 국내 의사 150여명도 찾아왔다. 현재 그의 모발 이식술을 전수받아 개원한 병의원은 전국적으로 14곳. 여기에서도 시술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환자와 의사들이 몰려들면서 바빠진 김 교수는 지난 1996년 모발이식센터를 설립했다. 2007년에는 대구시의 지원을 받아 모발이식 및 연구센터로 확장하고 지난 해 초에는 현재의 대구 도심 노보텔 빌딩내에 호텔같은 최고급 시설로 내외국인 환자들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 매년 100명의 의사들을 받아달라는 요청도 왔다. 또 이곳의 환자 32%가 서울사람들이다. 최근에는 매년 20~30명씩의 외국인 환자들도 찾는다. 이같은 국내외적인 인기에 대구시는 이 시설을 의료관광을 위한 주요 자원으로 주목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김 교수도 자신의 센터의 발전을 넘어 대구의 의료산업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밝힌다."앞으로 제조업은 중국을 겨냥해 서해안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대구가 가진 경쟁력 있는 분야는 바로 지식기반 산업입니다. 그 중 의료산업이야말로 대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의료 인프라가 전국에서 대구 만한 곳이 없습니다. 타 지자체의 경우 의료산업을 위해 여러 기업을 유치했으나 의료 인프라가 없어 기업들이 떠나고 있는 것만 봐도 대구의 의료 산업은 신성장 동력으로의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구 5만5천명의 헝가리의 도시 소프론을 소개했다. 국제적인 임플란트 시술로 유명한 이곳은 치과병원만 300개로 4천명의 의사들이 연간 18만명의 외국인 환자들을 유치하고 있다고 했다.

"의료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면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냅니다. 우리 센터만 하더라도 모낭분리사 및 모발이식 수술보조자 교육에 들어가 이미 100명 이상의 모낭분리사를 배출해 이들이 전국의 모발이식 전문병원에 취업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미국 노동통계국은 앞으로 고용이 급증할 분야의 하나로 의료산업을 들었습니다. 대구는 의료기관도 많고 임상실험 자원도 많습니다. 관심을 갖고 의료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우리 센터는 이를 위한 하나의 모델에 불과합니다."

김 교수는 최근 모발이 빽빽한 정상부위의 두피를 도려내지 않고도 모발을 지금보다 더 밀도 있게 이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모근복제 연구에 들어갔다.

김정철 교수는

△1976년 3월~1982년 2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사

△1982년 3월~1984년 2월 경북대학교 대학원 의학석사

△1984년 3월~1987년 2월 경북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

△1993년3월~현재 국제모발외과학회 국제자문위원 및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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