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호미곶면 구만 2리 정치망 어장 사장 최천만

최천만 사장

영일만 항만이 점점 확장되고 물동량이 불어나서 더 큰 배들이 많이 들락거리면 무언가 활기차고, 포항이 부자가 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만, 그러나 또 한편에는 대대로 물려받은 생활 터전을 잠식당해 삶이 점점 팍팍해지는 어민들도 있다. 호미곶면 구만 2리 어촌 주민들은 영일만 항만이 확장될수록 자신의 어장을 더 뺏기게 되는 아픔이 있다. 영일만에서 정치망어장을 하는 최천만 사장도 그 피해자 중의 한사람이다.

최사장은 극심한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중퇴'가 학력의 전부라고 솔직히 말한다. 그 만큼 세상과 맞서 치열하게 살아왔고, 학벌과 상관없이 몸으로 싸우며, 피나는 노력으로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16세부터 선원 생활을 시작해 22세때 선장 시험에 합격, 6년간 선장생활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에, 불편하고 음습한 선실에서 습자교본과 통신강의록으로 독학하고, 부지런히 책을 읽어 남 못지 않은 지식을 쌓았다. 그러던 중 마을의 공동어장 운영이 어렵고 경영이 방만해 빚이 많아지자, 그는 선장직을 접고 마을의 어촌계장을 맡아 3년 동안 봉사하면서 빚을 청산하고, 구만리 어촌계가 생긴 후 처음으로 잉여금도 만드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후 정치망에 관심을 가져 그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언제나 자신이 사랑하는 구만 2리,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 어촌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집념으로 가득하다.

-정치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데, 좀 설명해 주세요.

"정치망은 면허어업이지요. 말하자면 육지의 논밭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평생 내 것이고 바다 속의 내 구역에 들어오는 고기는 내 그물로 건져올리는 것이지요."

-정치망을 시작하실 때 도움을 주신 분이 계셨다면서요?

"예, 제게는 은인이지요. 원래 일제강점기때부터 정치망 사업을 하시던 서종렬씨와 인연이 닿아 그 분의 정치망을 세내 운영했는데, 그 분이 어장을 판다고 해서, 나는 그때 당시 돈도 없었는데 배려를 해 주셔서 외상으로 산 거죠. 옛날에는 정치망어장이 부자 사업이었는데 영일만을 개발하고 부터는 영세 사업이 되었습니다."

-항만 개발로 어떤 피해가 있습니까?

"영일만 수심이 17~25m인데 10만t 이상 짜리 상선은 선체의 12~13m가량이 물밑으로 내려가는데 거기서 스쿠루가 돌아 바다 바닥을 휘저으면 고기 먹이인 프랑크톤 같은 먹이생물들이 살 수가 없지요. 먹을 것이 없는데 고기들이 올 리가 없죠. 0.5t이나 1t짜리 작은 배들이 투망을 할 수도 없고, 큰 상선이나 화물선이 지나가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습니다. 영세어민들의 앞마당이 망가져서 생계가 어려워지는데 보상액은 턱없이 적어서 문제지요."

-책을 많이 읽으신다는데 주로 어업에 관한 책을 보십니까?

"아닙니다. 어업에 관한 책은 별로 없기도 하지만, 정치서적, 그 중에서도 역대 대통령이 쓴 글이나 평전 같은 정치관련 서적을 많이 사서 보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 참 옛날에 얼마나 못 살았습니까?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주신 박정희 대통령 제일 존경합니다. 박 대통령에 관해서 쓴 책이 한 57권 정도 있는데 나는 다 사서 읽었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대통령 전기나 자서전들도 다 찾아 읽습니다. 국민이 잘 살려면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해야 하는데, 대통령들은 어떤 생각, 어떤 정치철학을 가졌나, 그것을 알아보고 싶어서 자꾸 정치관련 책을 읽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아마 100권 가량은 읽었을 겁니다."

최사장은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어려운 가운데 2남1녀를 모두 대학까지 시켰고, 맏아들이 국비장학생으로 일본 유학을 해서, 지금 일본에서 한 회사의 대표로 있는 것은 그의 최대 자랑이다. 그는 대화 중에 아내를 칭할 때 꼭 "사랑하는 부인"이라고 말했는데, 자식 교육을 위해 30년이나 해녀생활로 고생한 아내에 대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의 표현인 듯하다.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은요?

"어떻게 하든 영세어민들에게 힘이 되고 싶고, 생활터전을 빼앗긴데 대해 정부 차원의 합당한 보상을 받게 하는데 힘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영일만 개발이 국가의 큰 국책사업인데 적극 협조를 해야겠지만, 적절한 보상으로 지역 어민들에게도 먹고 살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또 다른 꿈은, 한 6개월 동안, 지필묵을 챙겨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없는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가 민박하면서 글씨도 쓰고 우리나라 곳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글로 써서 남기고 싶은 것이다. 남은 생애에 서예도 연마하고 수필도 쓰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온 그의 마지막 소박한 꿈이 열매 맺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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