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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출신’ 최기문 전 경찰청장 인터뷰
‘영천 출신’ 최기문 전 경찰청장 인터뷰
  • 백영준기자
  • 승인 2011년 08월 04일 00시 10분
  • 지면게재일 2011년 08월 04일 목요일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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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계 인적네트워크 활용 지역발전 위해 일하고 싶어”
최기문 전 경찰청장

 '경찰'하면 최기문 전 경찰청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는 최초의 임기제 경찰청장으로서 인사청문회를 처음 거친 경찰수장이었다. 더욱이 경북 영천 출신인 그가 호남의 DJ(김대중)정권에서 승승장구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경찰청장에 도약한 것은 역대 정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최 전 경찰청장은 "열심히 일한 것이 배경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 수뇌부 시절 경북출신이어서 호남정권의 견제와 감시를 당하고 당시 집권당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출마차출에 거부하여 큰 불이익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행정고시 18회로 1981년 경찰에 입문한 그는 43세에 최연소 경무관에 진급한 뒤 1999년 치안감 인사에서도 최연소로 승진해 치안총수에까지 올랐다. 그런 그가 무엇 때문에 당시 정권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는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퇴임 후 당시 노무현 정권과 무슨 일이 있었지요.

 "경찰청장을 그만두고(2003년3월-2005년1월) 그해 4월 치른 영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출마를 권유 받았지요. 하지만 지역정서상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출마할 경우 낙선할 것이 뻔해 이를 거절했죠. 이때부터 정권에 찍혔다고 봅니다. 다음해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 출마를 또 권유받았죠. 행정자치부 장관 자리도 약속받았어요. 하지만 당시 정권과 엮이고 싶지 않았어요. 박명재 전 장관이 이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지요"

 -출마 차출을 거부하여 불이익을 당했다는 말씀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당했는지요.

 "이후 2007년 한화그룹 폭행사건과 관련,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됐지요.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형법상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민간인이 처벌받은 것은 처음이고 이후 사례도 없어요. 우리가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도 없는 일이지요. 공직을 그만 둔지 2년이 넘었고, 현직 공무원 신분이 아닌 민간인은 법처리 주체가 될 수 없는 데도,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당시 정권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까.

 "정의롭지 못한 정권이었지요. 법조계 일각에서도 있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대법원도 믿을 수 없더군요. 다행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이런 부당한 사실이 알려져 2008년 8.15사면을 받았죠"

 -당시 경북 출신이어서 감시도 심했다는데요.

 "특히 DJ시절 경북 출신 경찰 수뇌부라고 감시를 받았어요(그는 당시 경찰청 차장과 경찰대학장을 지냈다)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모임에 다니는지... 수뇌부가 되면 다 노출돼 사는 거죠. 역대 어떤 정권보다도 DJ정부 때가 심했어요. 경찰의 감찰조직을 활용해 수뇌부를 감시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정보로 음해도 했지요. 부모님을 호화스럽게 모신다는 등... 나중에 고향 초가집에서 부모님이 사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DJ 정부시설 승승장구 했지요, 무슨 비결이라도.

 "열심히 일한 것이 배경이지만 관운도 좋았죠. 청원서장 때 김원환 초대 경찰청장이 저를 발탁해 주었어요. 청와대 치안비서관실에서 3년10개월 근무하고 종로서장으로 부임해 경무관 승진을 기대했으나 조계종 법란사건이 터져 그 이듬해에나 승진했죠.(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종로 국회의원이었다) 이후 DJ정부 숙청 1호로 꼽혔지만 경북 출신인 저에게 정보심의관을 시키더라고요. 모든 정보를 최종 확인하는 경찰청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였어요. 아마 평소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경찰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999년 경북지방경찰청장에 부임하여 보니, 당시 승진하면 타지방으로 멀리 보내는 규정이 있었어요. 가족과 떨어져 있어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죠. 과감히 인사제도를 고쳐 경찰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됐고, 경제적인 효과도 6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았어요, 청와대에서 우수사례로 뽑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기억에 남네요"

 -화제를 돌려보지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기업에 자문도 해주고(그는 2007년1월부터 한화그룹 고문을 맡고 있다)동국대 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도 하고, 틈틈이 노인대 등에 특강을 하고 있어요. 주말에는 고향인 영천을 찾아 친인척이나 친구 등을 만나고 있어요"

 -고향을 자주 찾는데요. 어릴 적 고향에 대해 떠오르는 일이 있다면요.

 "당시 북안초등학교는 오전,오후 반이 있었지요. 학생 수도 수십명에 불과했어요. 그나마 농촌일이 바쁘면 학부모들이 학교로 찾아와 학생들을 데리고 갔어요. 요즘은 상상하기 힘드죠. 어머니 손을 잡고 완산시장(지금 영천시장)갔던 즐거운 일도 떠오르네요. 당시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자유당 정권 시절이었지만 민주당 의원이 당선된 기억이 있어요. 농촌지역이지만 야성이 강하고 정의감이 앞서는 고향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18대 총선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뜻을 접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때는 한화 사건이 재판에 계류 중이었어요. 변호사나 많은 사람들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출마를 만류했지요. 또 그런 상황에서 출마 준비를 하는 것은 당원의 도리(그는 한나라당 당원이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이 때문에 일부에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결단력 부족...웃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경찰 시절 인연을 맺은 공직자, 경제계 인맥 등 인적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서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가이드 역할도 하고 싶어요. 희망보다도 절망이 많은 시대에 태어나도 열심히 하면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 최기문 전 경찰청장 약력

△경북 영천 북안면 출신(59세) △해군대위 전역 △경북대사대부고·영남대 경영학과·서울대 행정대학원 △제18회 행정고시 △종로경찰서장 △경북지방경찰청장 △청와대 치안비서관 △경찰청 차장 △경찰청장 △경찰대학장 △계명대 초빙교수 △(현)한화그룹 고문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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