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조선 왕실서 하사한 중수기 추정…예술성 뛰어나

용문사 중수기(1185) 비문 좌우로 최고 단청문양인 '갖은 금단청 병머리초'가 화려하게 음각돼 있다.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에 1185년에 세워진 용문사 중수기에 새겨진 단청 문양 '갖은 금단청 병머리초'가 단청 기술자 및 연구사,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단청문양은 옛 조상들이 주로 목조 건축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채색되고, 목 조각이나 탱화 등에 주로 사용돼 왔으며 종교적인 엄숙성과 목조 건축물 보호를 위해 이용됐다.

특히 용문사 중수기에 새겨진 문양 형태는 특이하게도 비문 좌우로 화려하게 장식돼 마치 호리병을 세워둔 형태 안에 연꽃, 석류, 번엽 등의 문양이 뚜렷하고 파련, 인동등쿨무늬 문양이 비문 모서리 공간을 화려하게 감싸고, 음각은 손끝으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정교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갖은 금단청 병머리초' 문양은 단청 문양 중 최고의 문양으로 손꼽히는 것으로 일반 사찰의 단청 문양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며, 최고의 화공이 초안한 것으로 왕실에서 특별히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종교적인 권위와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이에 예천군청 이재완 학예연구사는 "용문사 중수기는 1185년에 왕실에서 용문사에 태실 비를 세우면서 왕실이 보호하는 국가사찰로 인정해주기 위해 특별한 문양이 새겨진 중수기를 하사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현재 용문사에 소재하고 있는 태실비는 성종 9년 소현왕후의 태를 봉안한 태실비로 알려져 있으며 소현왕후 태실비라고 음각돼 있어 당시 국가에서 하사된 중수기라는 추정에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다.

단청기술자 제448호 김윤기(46)씨는 "현재 국내에서 용문사 중수비의 정교하고 화려한 단청 문양이 석판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1185년도의 비문이나 문양이 확실하다"며 "이런 문양이 발견된 것은 단청사에 귀중한 자료다"고 평가했다.

한편 예천군 용문면에 소재하고 있는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두운대사가 용문산에 이르렀을 때 큰 바위에서 용이 그를 영접했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천년 고찰로 보물 제 684호로 지정돼 있는 윤장대를 비롯한 많은 불교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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