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전 오상고등학교 교장

세종교실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신진 (前) 교장선생님.

한글교실의 늦깎이 학습생 "한글도 모른다는 말 자식한테도 못합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부끄럽고, 미안하고, 분(忿)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못 배운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문맹의 고통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학력을 묻는 사람이 가장 싫고 미웠으며 저승사자보다도 더 두려웠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구세주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 같은 까막눈을 뜨게 해, 새 세상을 보게 해준 선생님들이라 생각합니다."

38년간 교직에 봉직한 신진(72)선생님은 퇴임 후에도 계속 38년을 더 문맹퇴치에 받치겠다 하셨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11년째 노인 학생들을 가르치시기에 여념이 없는 선생은 남은 생애, 제가 할 일은 아직도 문맹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노약자들을 구원하는 일이라 하셨다. '이 시대의 참스승' 피교육자들은 선생님을 우러러 구세주와 같은 은인이라 하였다.

-교육 봉사 가운데 특별히 문맹퇴치를 강조하신 것은?

"우리 사회에는 답답하고 억울한 일도 많지만 문맹보다 더한 것이 있겠습니까? 누구한테 들어내 놓고 물어볼 수도 하소연할 곳도 없는 문맹자들의 아픔을 교사로서 평생 가슴 아프게 생각해 왔습니다. 한글마저 모르는 사람들은 남편 앞에서도, 지하철을 탈 때도, 주소를 찾거나 간판을 못 읽을 때도 그들은 눈물마저 감추며 울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문맹자들은 전쟁과 가난 때문에 배울 기회를 놓친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의 문맹에 대한 책임은 국가와 사회가 다 함께 져야 합니다. 저는 교사로서 누구보다 더 책임감을 느낍니다."

-한글 교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성과는?

"가난한 사람들, 독거노인, 장애인, 결손가정이 밀집해 있는 산격복지관(산격1동)에 '한글교실'을 열었습니다. 문맹자는 예상외로 많았고 2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했으며 교육생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저를 공휴일도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글교육은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오전 오후 2개 반을 운영하고, 수, 목요일은 한글을 깨치고 난 사람들에게 검정고시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교육생들의 나이와 이해력 차이로 어려움이 있고 작은 실수에도 자존심은 아파해 항상 마음이 쓰입니다. 한글교실 개설 후 국문교육을 마친 사람은 300여명이고 초·중·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사람은 10명입니다."

필자는 한글을 해득하고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한 노인에게 물어보았다.

-한글을 깨친 소감은?

"문맹자는 '눈뜬 장님'입니다. 글을 배우고 나니 흑백으로만 보이던 세상이 이젠 천연색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그 동안은 까막눈으로 살아왔으니 누가 우리의 심정을 알겠습니까? 요즘 세상엔 글자가 그냥 글자가 아니라 중요한 생활도구입니다. 농부에 비유하면 남들은 농기구를 가지고 농사를 짓는데 우리는 맨손으로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저는 옛날 심봉사가 눈을 뜨고 심청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좋습니다. 지난날 학력 때문에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 이 세상이 싫어졌고 끔찍한 생각도 해 본적이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신진 선생님을 만나 태산 같은 은혜를 입으니 정말로 백골난망입니다."

-38년을 더 교육봉사를 하시겠다 했는데 38이라는 숫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38년 동안 교직에서 국가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38년 동안 교육봉사로 갚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특히 교사로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아직도 수많은 문맹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미력이나마 보답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진 선생은 대학시절부터 문맹퇴치와 농촌계몽운동에 큰 관심을 가졌다.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고향 의성군에 월명진흥회를 조직하여 문맹퇴치에 앞장섰으며 가난 때문에 진학 못한 사람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월명진흥 도서관을 설치하고 야간학교도 운영했다. 오상중고등학교 재직 시에는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한 제자들을 방가 후 자택으로 불러 16년간 검정고시를 지도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사랑으로 보살펴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한 진정한 스승이시다. 신진 선생은 ㄱ, ㄴ 도 모르던 어르신들이 이젠 편지도 쓰고, 운전면허도 따고 문자메시지도 보내는 것을 보고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셨다. 선생님의 천진한 모습을 보면서 고개 숙여 존경심을 보낸다. 선생은 대담을 마치면서 그 동안 한글교실 운영에 물심양면으로 특별히 도와주신 복지관 권명수 관장과 김미영 복지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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