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열 (주)보하라 대표

(주)보하라 이정열 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자칭 대구 홍보대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던 2주 동안 대구를 찾은 선수단과 미디어관계자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체인점에서 무료식사를 제공했다. 메뉴는 감자탕에 식용달팽이를 첨가한 보양식이었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2만명이 넘는 대회 자원봉사자와 시민 서포터즈를 위해 이틀간 공짜음식을 줬다. '달구벌아, 수고했다'는 이 행사 기간 동안 대구시민들도 절반가격에 감자탕을 맛 볼 수 있었다.

"전세계에 대구를 알릴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에 대구의 인심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대구는 저에게 제2의 고향이거든요. 다른지역 사람들은 흔히 이곳을 보수적이다고 하지만 무뚝뚝하면서도 정이 많은 '경상도 사나이'가 있는 이 곳이 좋습니다. 대구는 저와 참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대구에는 그 어떤 인연도 없는 100% 타지역 사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줄곧 자랐다. 8년 전 업무차 이 곳에 첫 발을 내딛었다. 지금은 대구에 대해 좋지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를정도로 대구를 사랑하고 있다.

190cm가 넘을듯한 키에 벌어진 어깨,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 거기에 굵고 낮은 베이스톤의 목소리까지. 그는 '(주)보하라'의 이정열(40)대표다. 그는 감자탕 프랜차이즈 업체를 이끌고 있다. 최근 시내 곳곳에서 '남(男)다른 감자(子)탕'라는 한문에 자신의 캐리커쳐를 떡하니 박은 간판을 내건 음식점의 주인공이 바로 이 대표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불리는 'H사' 오토바이를 타는 호그(HOG·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애호가)족이 등장할 정도다.

"아버지와 남편 등 모든남자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이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가게 분위기도 거칩니다. 직원들은 남자(男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습니다. 남자라는 글자는 보기만 해도 힘이 넘쳐나고 그 에너지가 직원들과 이 세상의 남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자를 좋아했다(?). 학창시절 꿈은 군인이었다. 사관학교에 들어가 '스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선도부장도 했다. 스스로 엄격한 규율을 지켜 나갔다.

하지만 군인의 길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멈춰야만 했다. 군인이 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목표가 없어진 그는 한없이 추락했다. 스스로 엄격했던 고삐를 풀었다. 이유없이 주먹질을 했고, 나쁜짓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동네에서 유명한 '싸움꾼'이 돼 있었다.

5번이나 고등학교를 옮겨다닐만큼 문제학생이 되어 있었다. 졸업 후에는 사설 경호원이 됐다.

학창시절 배웠던 태권도가 경호업무에 큰 힘이 됐다. 재력가의 경호를 맡으며 자연스레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게 됐고, 그러면서 차츰 '외식사업'이라는 또다른 목표가 생겼다.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외식사업이 성행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아이템을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우연찮게 감자탕을 맛보게 됐고,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때렸습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곧장 창업을 했다. 감자탕 프랜차이즈 업체의 체인점이었다. 가족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구했다. 모자란 돈은 친구들에게 빌렸다. 오랜 좌절과 방황끝에 세운 새로운 목표. 이번에는 꼭 이루고 싶었다.

가게운영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었지만, 하나하나씩 배워 나갔다. 한 때 날렸던 싸움꾼으로 남들보다 맷집은 자신 있었다. 스스로 다시 '선도부장'이 돼 엄격한 잣대를 세웠다.

그런 그의 노력은 금새 가게의 매출로 이어졌다. 어느정도 노하우를 쌓은 그는 자신의 목표인 '외식업체 운영'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브랜드를 내걸고 싶었지만, 경영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자탕 브랜드의 지역 지사권을 얻는 것으로 경영공부를 시작했다.

이 대표는 몇 주동안 각 지역을 돌며 시장조사 등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단 한번도 오지 않았던 대구지사의 판매권을 얻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대구에서 그는 몇 년만에 수십 개의 점포를 열었다. 연 매출액만 200억 원이 넘을 정도였다. 관렵업계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돌연 그는 지역 판매권을 내놓았다.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지만 자신의 꿈인 '외식업체 운영'을 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어느덧 대구사람이 돼 버린 그는 이 곳에서 본사를 만들었다. '몸을 보호하라'는 의미로 '보하라감자탕'을 열었다. 그리고 철저히 직영점으로 운영했다. 모든 것은 본격적인 감자탕 체인점 운영을 위한 사전 준비였다.

지난해 연말 내놓은 '남다른 감자탕'은 체인점이다. 내년까지 100호점을 오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지만, 당연히 달성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다.

"커피전문점 등과 달리 음식점 창업은 생계형창업이 대부분입니다. 다른 가족의 삶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는 마음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체인점만 내주면 되지, 나머지는 각자 몫'이라는 상당수의 프랜차이즈 본사를 보면 남자의 피가 끓습니다. 우리는 준비가 됐고 자신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본격적인 외식사업이 시작하는 단계지만, 그는 벌써 다음 목표를 구상하고 있다. 자신의 새로운 고향이 돼 버린 대구에 외식전문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는 이 학교가 나중에 대구를 이끌어 나갈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미국 최고의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와 프랑스의 르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등에는 전세계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요리를 배우기 위해 이 곳을 찾고, 또 이 곳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전세계에서 요리사로서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했다.

대구 역시 상당수의 프랜차이즈 업체의 본사를 가지고 있지만, 업체가 성장하면 수도권지역으로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 원인은 제조업 등과 달리 프랜차이즈업을 대수롭지 않은 업종으로 치중해 버리는 행정당국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프랜차이즈 업체는 분명 서비스업입니다. 수만 명의 고용창출의 효과부터 나옵니다. 또 인근의 농축수산물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의 상생발전의 효과도 있습니다. 한 해 수천억 원의 매출이 나오는 제조업이나 다른 산업에 비해 경제규모가 작아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구에서도 M 햄버거와 K 치킨 전문점과 같은 전세계 유명 업체가 나오지 마라는 법은 없습니다"고 했다.

그는 다음 목표를 위해 10년만 회사에 미쳐보겠다는 각오다. 그 이후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외식전문학교'라는 목표를 성공시킨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이정열 대표. 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진짜 남자 냄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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