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소오대산·북령산·용아장성

북대(北垈) 칼바위능선 안부에 설치된 야영객의 텐트들.

경북산악연맹(회장 강석호)에서 매년 실시하는 해외명산 트레킹 시리즈 중 2011년도 첫 산행지는 중국의 하북성(河北省) 탁록현(탁에 위치한 소오대산(小五臺山·2천882m)을 비롯한 북령산(1천890m), 용아장성(龍牙長城)이라 일컫는 만리장성(萬里長城) 구간을 지난 9월16일부터 20일까지 4박5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추석 명절을 쉬고 바로 떠나는 일정 때문에 예상했던 인원보다 적은 19명의 대원들이 김해국제공항을 거쳐 북경수도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중국시간으로 10시 50분(한국과 1시간의 시차가 있음).

 

2천550m 안부에서 본 소오대산 정상 동대에 하얗게 눈이 내렸다.

중국동포출신 나경문 가이드를 만나 짐을 찾고 나선 시간이 12시.

 

2009년 방문했을 때보다 더 깨끗해진 북경거리가 낯설지 않다.

 

왕정(望京)거리에 있는 '예원'이란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곁들인 점심을 먹고 오늘의 목적지인 소오대산 등산기점인 츠야보우(赤厓堡)마을로 향했다.

 

북경에서 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곳까지 4시간여를 달려야 한다. 중국여행의 지루한 버스 일정이 바로 시작된다.

 

중간에서 전문산악가이드인 마봉학 부장과 합류해 북경여행을 하면 필수코스인 팔달령(八達嶺) 만리장성 관광기점을 지나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고속도로를 끊임없이 달린다.

 

소오대산은 북경지역 사람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진 사계절 명산이지만 외국인들, 특히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진 게 없다.

 

이번 트레킹도 6월에 답사산행을 다녀 온 우리 임원들의 소개로 이루어진데다 충분한 자료가 없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지루한 고속도로 운행 중에도 재미난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안전경험일로평안(安全經驗一路平安) - 안전을 생활화(경험)하면 모든 길이 평안하다'-어떤 표현을 해도 안전운행을 위한 경구가 명쾌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1시간여를 달리니 저 멀리 구름 아래로 소오대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낮은 구릉은 계단식으로 농지를 만들어 놓은 데가 많으며 넓은 평야에는 온통 옥수수 밭이다.

 

간간이 해바라기 밭이 이어지고 붉은 벽돌 흙집이 군데군데 허물어 질 듯 서있는 마을을 지나 엄청 넓은 분지 끝자락에 '적애보삼림방화검사첨'이란 목적지에 닿았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6시 반이다.

 

초대소라 일컫는 막사 같은 단층 숙소가 가지런히 놓인 황량한 곳이다. 저녁노을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은 소오대산 주변 산군이다.

 

숙소배정을 받아 들어간 방은 나무침대가 세 개 씩 놓인 3인 1실의 온기 없는 냉방이다. 시설이라고는 화장실에 샤워꼭지만 달려 있는 정말 볼 품 없는 히말라야의 고산 롯지 보다 못한 방이었지만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음이 다행이다.

 

별도 식당이 없고 초대소 직원들이 간단히 해결하는 좁은 식당에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중국에서의 첫 만찬(?)을 삼겹살구이에 소주 한 잔으로 시작한다.

 

내일의 소오대산 산행을 위해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지만 선뜻 잠이 오지 않음은 룸메이트인 손정익 이사도 마찬가지다.

 

9월 17일,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기상해 까칠한 입으로 아침밥을 먹는둥 하고는 컵라면, 맨밥도시락, 단무지 등이 있는 점심꾸러미를 생수와 함께 넣고는 서둘러 초대소를 나선다. 오늘의 산행시간이 총 10시간 정도라는 설명에 다들 겁을 먹지만 이미 출발선에 선 뜀박질 선수의 마음일 수 밖에 없다.

 

초대소 밖에 빨간색 지프차가 두 대 기다린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트레커들을 실어 나르는 전용차량은 아닌 것 같고 꾸깃꾸깃 눌러 타니 열 명이 들어간다. 웅크리고 배낭을 안은 채 좁은 비포장길을 40여분 달린다.

 

도착지점에 도달하니 검문소 같은 곳이 있다. 아무나 들여 보내주지 않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기서 산행 입장료를 받고 입산허가를 한다.

 

차에 내려서 타고 온 차를 자세히 보니 '하북삼림소방(河北森林消防)' 이라고 크게 쓰여진 차량이다. 하북성 삼림청 소방대소속의 관용차량인 것이다. 이곳은 아직도 관광지역으로 개방이 되지 않은 특별한 지역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희뿌연 여명에 선 일행들이 출발 전 기념촬영을 마치고 넓은 임도를 따라 오른다. 출발점의 고도가 1천700m다.

 

일행들을 먼저 보내고 손이사와 천천히 오름짓을 시작한다. 30여분 올랐는데 벌써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호흡조정이 제대로 안된 것 같다. 몸 상태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일행을 책임져야 할 입장이라 물러설 수가 없다.

 

산악가이드 마부장이 난감해 한다. 갈 길이 먼데 이런 상태로는 어렵다는 느낌인 것 같다. 도무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배낭의 무게도 더 무거워진 것 같고 한 발짝 떼기가 어렵다. 이제껏 수많은 산행을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앞선 일행들의 진행속도에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먼저 가는 라경문 가이드가 무전을 계속한다. 이미 선두는 2,550m 지점 안부에 도착했단다.

 

고도차 900m 정도를 이렇게 어렵게 오르니 내 자신이 실망스럽다. 2시간여 걸려 안부(2,550m)에 올라섰다. 이미 선두그룹은 정상을 향해 떠나고 없다. 넓은 초원으로 형성된 안부는 야영장이다.

 

야영을 위해 이곳 저곳에 텐트를 치고 쉬는 중국 젊은이들이 한가롭게 가을볕을 즐기고 있다.

 

저 멀리 하얗게 신설(新雪)을 덮어 쓴 소오대산 최고봉 동대(東垈, 2,882m)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소오대산은 하북성 최고봉으로 동, 서, 남, 북, 중 다섯 개의 봉우리로 형성된 길이 48km의 산군이다.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불교명산 오대산 보다 조금 낮다는 이유로 소(小)오대산으로 불린다. 우리가 오르는 코-스는 넓은 초원과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동대를 지나 북대(北垈 2,837m)에서 부터는 설악산 공룡능선을 능가하는 칼바위능선이 이어져 산행의 묘미와 함께 소오대산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정상을 향한 능선산행이 시작되었다. 손이사, 마부장이 필자 때문에 일행과 떨어져 죽을 맛이다. 산 아래와 기온차가 엄청나 얇은 눈이 내려 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능선에는 큰 나무는 없고 무성한 갈대와 키 큰 풀들이 바람에 세차게 흔들린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전진하기가 어렵다. 한참을 바람과 싸우며 오르는데 셀파산장 여사장인 최상희 여사가 내려온다.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단다. 호흡도 좋지 않고 거센 바람으로 정상 오르기를 포기하고 내려온다. 안부에 내려가서 쉬라고 이르고 다시 전진했다.

 

선두의 남영모 대장의 다급한 무전이 날아온다. 기온이 엄청 내려가 추위에 견딜 수 없으니 준비를 단단히 하란다. 바람이 없는 반대편 사면에서 다운자켓과 방한모, 멀티스카프, 장갑 등으로 중무장 하고 다시 치고 오른다. 강풍과 함께 영하로 떨어진 듯 매서운 기운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스틱을 쥔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바람이 멈추지 않을 것 같다. 1시간여 올랐지만 더 이상은 무리다. 마부장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 역시 어렵다 한다. 어쩔 수 없이 안부로 되돌아섰다. 선두그룹은 이미 정상부위에 다다른 것 같았다. 필자 때문에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를 망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안부에서 정상상황을 계속 체크했지만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육안으로 볼 때는 정상부위에는 바람이 없다. 다행이다.

 

기상악화로 동대 정상에서 북대를 거쳐 칼바위능선을 통과하는 종주산행은 결국 실행하지 못했지만 동계곡의 계곡미와 폭포 등으로 소오대산의 트레킹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것 같다. 1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정상을 갔던 일행들을 만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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