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면 문화재 박사' 모르면 간첩
'장기면 문화재 박사' 모르면 간첩
  • 이정희 명예기자
  • 승인 2011년 11월 03일 00시 03분
  • 지면게재일 2011년 11월 03일 목요일
  • 12면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0년 교직생활 마치고 지역 문화재 연구에 매진
금낙두 전 장기중학교 교장.

어느 지역이던지 고향을 지키며 고향의 발전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포항시 장기면의 금낙두 전 장기중학교 교장은 좀 특별하다. 금 선생은 1964년도에 장기중 교사로 첫 부임해서 그 학교에서 교장까지 지내며 40년간 봉직하고 2003년도에 정년을 맞았다.

고향이라는 것은 떠나 있을 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언제나 가고 싶은 따듯한 어머니의 품같은 곳이지만, 그 속에서 줄곧 생활하다 보면 매사 처신하기 조심스럽고 답답한 것도 사실이라, 금 교장도 1979년도에 고향을 떠나 타지역의 공립학교로 가려고 모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가족, 친지들의 만류로 고향의 학교에 계속 머물면서 장기 발전의 기틀을 닦아나갔다.

그는 퇴임한 지금도 장기발전연구회 이사, 장기충효관 운영국장, 포항장수대학 학장직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그는 장기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다. 특히 장기에 있는 문화재를 알려면 금교장을 찾으면 된다는 정평이 나 있다.

장기에는 국가지정문화재가 2점(모포줄다리기, 장기읍성) 있고, 도 문화재가 2점(척화비, 장기향교) 있다. 그래도 장기에서 제일 유명한 천연자원은 뇌성산(磊城山)에 있는 뇌록(磊綠)이라 할 수 있다. 금 교장은 뇌록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탐방객에게 안내도 해주면서 그들의 명단도 기록해 놓고 있다.

-뇌록에 대해서 좀 설명해 주세요.

"뇌록은 뇌성산에서 나오는 천연 녹색안료입니다. 돌에 청록색 돌들이 섞여 있습니다. 주성분은 구리인데, 쉽게 말하면, 우리가 옛날에 사용했던 놋그릇에 구리가 산화되어 파랗게 되는 그런 것과 같은 성분이지요. 전국에서 장기 밖에 없는, 국가에 진상하는 안료였지요. 아마 신라시대부터 사찰 단청이나 탱화같은 것에 쓰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뇌록을 캐던 광산 자리도 있는데, 그곳을 쉰 구덩이라고 합니다. 쉰명이 묻힌 구덩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초백이(예전 사리나무 잔 가지로 엮은 도시락) 오십 개가 나왔다고 해요"

-향토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잠시 타 지역 학교로 갈까 하다가 집안 어른들의 강한 반대로 눌러 앉았는데, 마침 경북교육청에서 향토에 있는 역사 자료들을 모아 연구 조사하는 일을 맡겼어요. 이 일을 학생들과 하면서 어른들을 뵙고 얘기도 들으면서 고향에 대해 모르던 것도 알게 되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 돈독해졌지요. 1979년도를 정점으로 학생 수도 점점 줄고 해서 장기가 발전해야 학교도 번창한다 싶어 1980년도에 '장기발전연구회'를 발족했습니다. 객지에 나가 활동하는 분들도 많이 참여하고 협조합니다. 이 충효관도 그렇게 힘을 모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충효관 운영국장도 맡고계신데...

"장기는 군 관내에만 서원이 11개가 있을 정도로 학문을 중시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우암 송시열 선생과 다산 정약용 선생이 거쳐 가시면서 학문의 큰 맥이 이어졌지요. 두 분을 기리는 사적비도 세웠습니다. 충효관에서도 서예반을 만들어서 지역민들을 공부하게 하고, 예절교육 한자교육 등 아이들에게 인성교육도 시키고, 2009년도에 장수대학을 설립해서 거의 100명 정도 등록을 했습니다"

-장수대학 학장이신데, 어떻게 운영하시는지요?

"주로 건강에 관한 문제, 웃음치료, 기체조 등도 하고, 보건소에 부탁해서 단체로 치매검사도 하고, 지역 단체장이나 고명한 인사들의 특강도 마련하지요. 우리 노인대학은 다른 지역과 좀 다른데, 졸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년 전문과정, 4년 학사과정, 다음 2년 석사 과정, 다음 2년 박사과정, 박사 위에는 봉사 과정인데 봉사 과정은 연수에 제한이 없으니 하늘이 부를 때까지 다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2년 과정이 끝날 때마다 졸업식이라 하지 않고 승당식(升堂式)을 거행합니다"

노인대학에서는 분기별로 만원씩 내는 돈으로 간식비나 잡비를 쓰고, 형편이 좀 나은 학생들이 내겠다는 찬조금은 받지 않는다. 찬조금을 내는 사람들은 좋은 마음으로 내지만, 못내는 사람들의 위축되는 마음을 생각해서 받지 않는 것이다. 금 교장의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씀이 느껴진다.

-아직도 많은 일을 하시는데 그 중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모든 일이 다 즐겁고 보람을 느끼지만, 장기에 있는 문화재를 사람들이 보러오면 정성껏 안내하고 소개하고 설명할 때 보람을 느끼지요"

대학 다닐 때와 군복무 때 외에는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금낙두 교장, 우암 선생이나 다산 선생은 유배길에 잠간 이곳에 머물렀지만, 금선생은 장기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그 분들의 애민정신을 오늘에 이어나가며, 고향에 뿌리를 내린 거목으로 의연히 서 있는 것이다.

이정희 명예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wan 2011-11-04 13:47:31
고향에서 굳굳히 향토문화에 관심을가지고 노인건강에대해 애쓰시는 금낙두선생님을 이지면을통해 다시 알게되네요..장수대학에 졸업식대신 승당식 이란말도 너무나 감동이네요.. 이정희기자님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