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후 역사공부 매진…신라사·한문강의에 열심

시인 정민호 선생.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의 논어 학이편 첫머리에 나오는 이 구절은 옛 교과서에도 실렸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가장 유명한 경구이다. 시인 정민호 선생은 70이 넘으신 오늘날까지 이 경구를 실천하며 사시는 분이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한학자이고 유학을 숭상하시는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고 중학교 진학을 위해 포항으로 나올 때까지 엄격한 유교교육을 받고 자랐다.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느라고 초등학교 입학도 남보다 2년이나 늦게 했다. 선생은 대학에서는 문예창작을 전공해서 시인으로 등단했고, 경주 근화여고에서 국어와 한문을 가르치고, 정년퇴임하고는 우리 역사, 특히 신라사를 많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요즘도 경주 향교에서 운영하는 사회문화연구원에서 신라사와 한문을 강의하면서 평생 공부한 자신의 지식을 후학들에 나누며 봉사하고 있다.

-글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계기라면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영향이 컸지요. 선생님이 방학숙제로 일기를 써오라 하셨는데, 수업시간에 잘 쓴 사람 것을 읽어주신다기에,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내 것이었어요. 나중에 선생님이 글재주가 있는 것 같다면서 글을 써 보라고 하셨는데, 중3때 백일장에서 장원하고, 고등학교 때 신문사에서 주최한 시조공모전에 2등하고, 여러곳에서 입상하고 하니 내가 가야 할 길이 이쪽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갔는데, 그 당시 유명한 시인 작가들이 그 학교에 교수로 많이 계셨어요. 그래서 집에 어른들은 반대하셨지만, 그분들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힘을 주었지요. 특히 동리(東里)선생이 배려해 주셔서 장학금도 받았지요."

-다른 장르보다 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내가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박목월 선생의 '산도화'라는 시집을 읽고 감동해서였지요. 그 시집을 읽으면서 목월 선생 얼굴만 한번 볼 수 있어도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에 가서 목월선생님의 명강의를 들으니까 나도 금방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재학 중에는 등단을 못하고 몇 번 낙방도 하다가 졸업 후 1965년도에 '사상계'에서 하는 공모에 당선되고 나서 포항에 와 경주 문협회원으로 등록을 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그동안 시집은 몇 권이나 냈고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가 있다면요?

"첫 시집인 '꿈의 경작'을 시작으로 13권을 내고 시 선집을 두 권 냈습니다. 모든 작품이 다 애착이 가지만 그래도 역시 사상계에 처음 등단한 작품인 '이 푸른 강변의 연가'지요. 6.25때 형산강 전투와 과수원이 접목된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제목이 '과수원'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시작(詩作)보다 역사 쪽에 더 힘을 써시는 것 같은데 역사공부는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사실 내가 시인이 안 됐으면 아마 사학자가 되었을 겁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다 보니 역사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어 역사 공부는 자연스럽게 되었어요. 중, 고등학교 때 역사나 국어 공부는 별로 할 게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2000년에 학교에서 퇴임하고 역사 공부를 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어요. 더구나 경주라는 곳이 역사문화의 고장 아닙니까. 요즘 사회문화연구원에서 하는 신라사는 한자로 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원문에 현토(懸吐)-한문에 토 달고 풀이하는 것-를 달아서 공부하는데 한문과 역사공부를 동시에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삼국유사는 더러 현토를 단 사람이 있는데 삼국사기는 현토를 단 사람이 아직 없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의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민호 선생은 퇴임 후에 경주문화원에서 5년간 교양한문학교를 열어 시민들의 한문지식을 넓혀주기도 했으며 '당시정해'와 조선시대 야사를 엮은 '조선왕조5백년'을 펴냈다.

-한문반도 하신다는데 일주일에 며칠이나 강의하시는지요?

"신라사 두 번, 한문반 두 번 일주일에 4일 합니다. 아직 해낼 만 합니다"

-이 연세에 대단하신데, 그래도 앞으로 더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요?

"인제 다른 일 보다 삼국사기 현토 다는 일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이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해야 될 일이기도 합니다."

시인이면서 역사학자이며, 또한 한문에 조예가 깊으신 정민호 선생, 아직도 그의 학문과 가르침에 대한 의욕은 한계가 없다.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어디 한 틀(학문)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 가지를 배워 두루 원만해야 한다_를 잘 실천하는 정민호 시인, 그는 자신의 뜻을 펴 나가며, 존경받는 노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지역의 선도산인(仙桃山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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