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적으로 소리 좋아해 50여년 '외길인생'

포항에 시조창을 처음으로 보급한 앵초 김정미 선생(오른쪽).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시조창이라면 연세 지긋한 남자 어르신들이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점잖게 몸을 흔들며 시조를 읊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만, 김정미 선생은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여자로서 시조창을 배워 75세 된 오늘날까지 대한시조협회 포항지회에서 시조창을 가르치며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고향인 전주에서 포항에 와, 포항에 시조의 씨를 뿌린 앵초 선생은 이론이 탄탄하고 시조창의 율(양성), 려(음성) 12가락을 정확하게 잘 가르치는 분으로 소문나 포항 뿐 아니라 경주 등 인근 도시에서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고 포항시에서 주는 시민 공로상등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주가 고향이신데 포항엔 어떻게 오시게 되었습니까?

"아들이 포철에 취직되어 아들 따라 와서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여자들이 잘 안 하는 시조창을 하시게 되었는지요?

"그 얘기를 하자면 길어요. 옛날에는 국악이다, 창이다, 이런 걸 하려면 양반의 집에서는 무지 반대했습니다. 집안 망신시킨다고. 나도 처음에 가야금을 했는데, 아버지께 많이 매를 맞고 몇 년간 접었었지요. 그런데 천성적으로 소리를 좋아했으니, 아무래도 포기가 안 되어 기회를 보고 있는데, 어쩌다가 시조창 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배우기 시작했어요. 나는 아들 하나 얻고는 젊어서 남편 잃고 혼자 친정에 와 있었는데, 어머니가 혼자 살면서 무슨 낙이 있겠나, 지 좋아하는 것 하게 하자고 아버지를 설득해서 시조를 계속하게 되었지요"

-시조창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시조창의 원류는 가사입니다. 가사에서 시조창으로 발전했지요. 가곡, 가사, 시조만 정악(正樂)으로 정(靜)적이고, 그 외에는 민속악으로 대체로 동적이지요. 현대 사람들은 뛰고 몸을 많이 움직여 운동하지만, 시조창은 가만히 앉아서 해도 단전호흡이 돼 건강에는 더 좋은 것입니다"

-포항에 처음으로 시조창을 보급하신 분이라지요?

"뭐 그런 셈이지요. 내가 1978년도에 포항에 와서 힘들게 살다가 박일천 초대 시조회 회장님이 사범으로 불러주시고, 그 다음 박재호 회장님이 도와주시고, 시우회에서 시조창을 가르쳤지요. 그때는 포항에는 가르치는 선생도 없었고 거의 시가의 불모지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포항시조협회라면 전국적으로 알아주고 전국시조경창대회에서 최고상도 여러번 받고, 사범으로 활동하는 제자들도 많습니다"

-지부에서 교습도 하시는데 회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한 40명 정도 되는데, 다들 생업에 종사하는 틈틈이 배우러 오니, 시간이 안 맞아서 한자리에 많이 모이기 힘들어요"

"모두들 자기 시간 나는 대로 아무 때나 오니 우리 선생님이 학생들 시간 맞춰 주시느라 힘드셔요." 선생의 장구 가락에 맞춰 창을 배우고 있던 소락(笑樂) 김순자 선생이 한 마디 거든다. 김순자 시조회 부회장은 4년째 선생에게 배우면서 시조창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시조창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좋은 점이 정말 많지요. 단전호흡을 하게 되니 숨이 길어집니다. 단순히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고 오장육부가 다 움직이니까 허리 아프다는 사람이 없어요. 노화도 지연시켜주고, 건강을 지키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오십년 가까이 시조창을 하시면서 보람된 일은요?

"제일 보람 있었던 일은 국악 불모지인 포항에 와서 시조창을 보급하여 후학들을 많이 길러내고, 대한시조협회 포항시지회를 전국에서 알아주는 지회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시조창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시조창을 '콩죽 먹고 배앓이 하는 소리'라고 우스게 소리를 하지만, 시조 배우러 오는 분들은 모두 점잖은 분들입니다. 시조창에는 음치가 없어요. 창법을 먼저 가르쳐주기 때문이지요. 처음 배울 때는 좀 답답해서 성질 급한 사람은 견디기 힘들지만, 참고 어느 정도만 정진하면 성격이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집니다. 시조창은 한번 그 매력에 빠지면 점점 심취하게 되고 건강에도 좋은 것이니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창을 가르치시겠느냐는 질문에, "이제 젊은 사람에게 미뤄주고 병풍 뒤로 사라지고 싶다"고 하자, 옆에 있던 김순자 부회장이 "젊은 사람들한테 배울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 소리의 경지에는 어림 없지요, 맛이 달라요" 하면서 아직은 더 지도하셔야 된다고 강변한다.

선생의 건강상태로 봐서는 앞으로 얼마든지 더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활기차게 일하시는 두 분의 건강한 모습에서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노년의 여유와 곰삭은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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