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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이겨내고 '벼농사의 달인'으로
역경 이겨내고 '벼농사의 달인'으로
  • 이정희 명예기자
  • 승인 2012년 02월 01일 22시 29분
  • 지면게재일 2012년 02월 02일 목요일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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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동해면 '황보농장' 경영주 황보 경달 씨
'황보농장' 을 경영하고 있는 황보 경달 씨.

스스로 포항시 동해면 큰 머슴으로 자부하는 사람,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위었는데도 자식을 돌보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는 아버지를 원망도 하지 않는 사람, 논 두 마지기로 시작해 3만평의 벼농사를 지으며 '황보농장'이라는 어엿한 간판을 달고 있는 사람, 77세에 트랙터를 끌며, 자기 논의 피마져 사랑하며, 우직하게 벼농사만 짓는 사람, 황보 경달 농장주는 이런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으니,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고, 어머니 돌아가시고 백부댁에 얹혀 지내다가 큰집도 풍비박산 되자 동생들은 남의 집에 입양돼 가고 자신은 이런 저런 막일하며 떠돌다가 군 입대를 했다. 제대 후 큰 아버지가 논 두마지를 남겨 둔 것을 근거로 다시 고향에 돌아와 뼈 빠지게 노력해서 오늘날 모범 농가로, 동해면 논은 거의 다 맡아서 짓는, 대 농장의 농장주로, 번듯한 살림집도 지어 도시사람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그의 고향 친구 박재호 회장은, '공부 많이 한 사람은 마을마다 있지만, 그런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을 만든 이 친구는 참으로 귀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그렇게 고생한 흔적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웃는 모습이 맑고 소박하다. 천성적으로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묵묵히 순응하며, 어떤 역경이나 고난도 포용하는 자세가 몸에 베인 듯하다.

-논 두마지기로 시작하셨다는데 어떻게 이 많은 농사를 짓게 되셨는지?

"그게 다 내 논은 아니고, 포철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모두 포철에 인부로 가고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빈 논이 많았지요. 그래서 그런 논들을 받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지주보다 경작하는 사람이 우선이라 농사도 할 만 합니다. 우리 논도 제법 되는데 그것은 둘째 아들이 샀습니다. 다행히 둘째가 영농후계자가 되겠다고 해서 나를 도와 농사를 지으니 고맙지요"

-그 연세에 많은 농사를 지으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제일 힘듭니다. 마을에서는 아예 젊은 사람 구경하기 힘들고 노약자뿐이어서, 포항 인력시장에서 일군을 조달해 옵니다."

-동해면에서 모범농가로 손꼽히시는데 특별한 농사 비법이 있으신지요?

"뭐 특별한 것이 있겠습니까? 남 잘 때 덜 자고 남 놀 때 더 일하고, 그렇지만 비료를 덜 쓰고 유기농으로 지으려고 노력합니다. 벼 수확을 하고 나면 바로 볏짚을 잘라서 논에 뿌려두면 그대로 퇴비가 되어 비료를 덜 써도 되지요. 소도 우리 소는 사료를 먹이지 않습니다. 짚과 쌀겨만 먹는 생식소지요.

-농사지으시면서 제일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경운기에서 트랙터로 바꿀 때 그것 익히느라 힘들었어요. 지금은 트랙터로 온 동네 다니고 나무도 해오고 합니다. 트랙터로 이 골짝 농사를 내가 다 하니 유지가 되지 벼농사는 조금 지어서는 남는 게 없어요."

-운전면허증도 연세 높으실 때 따셨다면서요?

"허허 그랬지요. 67세에 면허시험을 보는데 아주머니들이 저 할배 붙는지 보자 하고 구경했지요. 단번에 합격하고 나서 아들 며느리한테 꽃다발 준비 해 놔라 전화해서, 옆구리 찔러서 꽃다발도 받았습니다."

-학교도 못 가셨는데 한글은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초등학교 국어책을 구해서 혼자 독학하다가, 군대 가면 무학자들한테 두 달 동안 한글을 가르쳐주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때 제대로 배웠지요."

-그렇게 살아오시면서 서러울 때도 많았을 텐데요?

"많았지요. 이집 저 집 남의 집살이하며, 학교 가는 또래 아이들 보면, 나만 학교도 못 가고 이렇게 사는구나 싶어 서러웠고, 6.25 전 후로 한 육 칠년 아버지하고 같이 살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내가 나무 하고, 15살 나이에 지게지고 지게꾼 노릇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때도 별로 일을 안 하셨어요. 내가 아버지를 먹여 살린 셈이지요. 그렇게 고생하고도 내가 지금까지 큰 병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 보면, 여섯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혼령이 보살펴주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렇게 자식을 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복을 잘 타고 났으면 좋은 부모를 만났을 것인데 다 우리 복이 그것 밖에 안 돼서 그렇고, 아버지는 또 그렇게 살아라 카는 사주팔자라 그런 기지. 그래도 지금 이래 잘 살고 있으니 내 사주팔자도 과히 나쁘지 않지요.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의 뒤를 이을 영농후계자 아들 식구와 그의 발자국 소리를 반가워하는 소 두 마리, 그리고 살찐 고양이 두 마리, 이 모두가 지난 해 먼저 간 아내를 대신해 줄 그의 가족들이다. 주변을 훈훈하게 하는 그의 맑고 소박한 웃음이 그의 복되고 편안한 여생에 늘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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