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하 영일고등학교 교장이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교육은 가장 우리 가까이에 있으면서 가장 중요한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런데 요즘 이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학교 폭력이다 왕따다 해서 사회가 시끄럽고 급기야 자살소동까지 일어나니 학부모들은 내 아이, 믿고 보낼 학교가 없다고 걱정한다. 비록 일부 학교, 일부 학생들의 문제라 할지라도, 학부모들은 '혹시 내 아이의 학교는, 내 아이는' 하는 우려로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학부모의 고민을 덜어주고 학부모에게서 감사편지도 받는 학교가 있고, 그 학교를 그렇게 만든 최상하 교장선생님이 있다.

포항시 연일읍에 있는 영일고등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지정한 인성과 창의의 모범학교이고 지금까지 33개 학교 교사들이 견학왔고, 견학을 신청하는 학교가 계속 있다. 최상하 교장선생님은 올해 76세이지만 아침 7시면 학교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근무하면서, 사진이 붙어 있는 전교생 860명의 기록부를 꼼꼼히 살펴 학생들의 현재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상담해서 학생들이 어긋난 길로 빠지지 않게 배려한다. 최 교장선생님은 처음부터 교육자의 길을 간 분은 아니지만, 오늘날 교육계에서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존경을 받는 참 교육자이다. 그는 이미 2001년도에 포항시민상을 받았고 2010년도에는 한국교육자 스승상 대상을 받은 바 있다.

-교육에 뜻을 두신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젊었을 때는 건어물 장사를 시작해서 수출도 했는데, 돈이 좀 벌어졌어요. 그래서 돈을 가장 보람 있게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내자와 함께 생각해 보다가 교육사업을 택했습니다. 그때 당시 영일중학교를 인수해서 영일고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45세였는데 교사자격증도 없고 해서, 대학에 가서 교육대학원까지 마치고 자격증을 따서 9년간 평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영일고등학교가 명문고로 자리매김하기까지 힘든 일도 많으셨겠습니다.

"그렇지요. 처음에는 영일고등학교 다닌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학부모들도 그랬지요. 돈 버는 것보다 제대로 교육을 한다는 것은 참 힘든 것이란 걸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학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어떤 교육방법으로 학교를 발전시키셨는지?

"첫째 학교가 즐거운 곳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입학하면 바로 좋아하는 악기 하나씩 배우게 했습니다. 또 비전 캠프를 운영합니다. 학생들의 꿈과 비전을 키우는 영일 아카데미입니다. 그리고 전통예절을 한 학년에 10시간씩 가르치고 부모님께 차를 올리는 시간도 마련해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효도하는 마음을 키워주려고 했습니다. 물론 성적도 올려야 하지만, 인성교육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교육을 시킵니다. 성적제일주의 안 해도 우리 아이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 많이 들어갑니다. 적성에 맞는, 꿈을 심어주는 학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봉사를 많이 하는 학교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 맺은 곳이 14곳이 있는데 거기에 한 달에 한 번 봉사 나갑니다. 3학년은 공부해야 하니 안 가고 1~2학년은 전교생이 다 참여합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이 노인들을 이해 못하고 무례하게 구는 예가 많은데 우리 아이들은 양로원 같은 곳에 봉사 다니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잘 이해하고 따릅니다. 우리는 형식적인 봉사가 아니고, 봉사 다녀오면 아이들이 일지를 쓰고 그것을 제가 일일이 읽어보고 1년에 한 번 책으로 냅니다."

그는 요즘 학생들 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불미스런 일들을 교육으로 풀어야 한다면서, 감성적 교육과 정서적 안정, 적성에 따른 자기 목표를 분명히 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5년 전 위암에 걸렸지만 자신의 의지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지금은 건강을 찾았을 뿐 아니라, 아직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작은 건어물상을 시작할 때부터 그의 마음에 담고 있는 '도전은 아름답다, 불가능에의 도전은 더욱 아름답다' 란 명구가 영일고등학교에서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상하 교장선생님, 그분의 도전정신과 참교육자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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