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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청과 8번 경매 중개인 김희덕씨
포항청과 8번 경매 중개인 김희덕씨
  • 이정희 명예기자
  • 승인 2012년 03월 05일 22시 33분
  • 지면게재일 2012년 03월 06일 화요일
  • 1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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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물 경매 힘들지만 새 삶 찾았죠"
경매에 참여하고 있는 김희덕 씨.

아무리 여성이 주도하는 시대라 하고, 여성들이 감당 못할 직종이 없다지만 그래도 여성들이 도전하기에 버거운 직업은 있다. 청과물을 경매하는 일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인데, 김희덕씨는 남성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혼자서 그 일을 해내고 있다. 힘들고 거친 일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안동 양반 가문의 규수로, 제대로 교육받고 곱게 자라 육군 고급 장교의 부인이 돼 평온한 삶을 살아 왔지만, 과거를 접고 지금은 이 일에 뛰어들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해낸다. 그녀의 모습에서도 활기가 넘치고, 스스로 8번 아가씨라고 할 만큼 나이를 잊고 산다. 성실히 자라서 대학교수가 된 맏아들, 장학금으로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둘째 아들, 자신을 이해하고 따라주는 며느리와 사랑스런 손자, 이들은 그녀에게 활력을 주는 종합미타민이다.

남편은 사업에 실패한 충격으로 먼저 갔지만, 그녀는 아직도 마음속에 곱게 담아둔 남편과의 추억을 반추하며, 혼자 일하고 혼자 산다.

-여자로서 하기 힘든 일인데 어떻게 이 일을 선택하셨는지요?

"남편이 군 제대하고 건설업을 했는데, 잘 하다가 그만 실패하는 바람에 내가 하고 있던 스포츠 용품 가게까지 다 날리게 되었지요. 여기 청과물 경매장에 남편이 아는 사람이 있었고, 남편이 노후대책을 부탁해 본다고 해서 따라 왔는데, 이 곳의 분위기가 활기차고 생동감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발을 들여놨는데, 몇 달 후에 돌연 남편이 돌아가셨어요. 그후 남의 손 안 빌리고 지금까지 혼자 하고 있습니다."

-힘든 일이 많으실텐데요?

"그렇지요. 다 힘들지만 무거운 물건 실어 나르고 옮기고 하는 일이 제일 힘듭니다. 아무래도 남자들 힘에 못 미치지요. 다른 분들은 30년 이상 이 일을 한 노련한 분들인데 4년 밖에 안 된 내가 버티려면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분들은 가족끼리 힘을 모아 하는데 나는 도와 줄 사람이 없어요. 아들들은 다들 자기들 일이 바쁘니 도울 처지가 못 되지요. 일이 힘들기야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이 재미있고 일하는 동안에는 잡념이나 걱정도 없어지고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공부도 많이 하신다 들었습니다.

"예, 한문 공부도 하고, 난도 좀 치고, 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책을 많이 읽습니다. 여러 계층의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책을 읽어 지식을 쌓으면 손님들과 대화하기도 수월하고, 붓글씨를 쓰거나 난을 치며는 심신 수양도 되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이 일이 좋으신 이유는요?

"일을 하니까 우선 심신이 건강해지지요. 항상 활력이 넘치는 가운데 있으니까 마음이 젊어지고, 돈을 버니까 좋고, 내가 이 나이에 집에 들어앉으면 금방 노인이 되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니까 젊어지는 것 같고, 이 속에서 움직이다 보면 걱정거리를 생각할 틈도 없어요. 나이보다 젊어 보인단 소리 들어요"

-이 일을 하면서 이것만은 지키겠다는 원칙이 있으신지?

"모든 사업이 다 그렇지만 장사는 신용과 믿음이 생명이지요. 내 물건 사러오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고 잘못 되었다고 바꾸러 오면 언제나 바꿔줍니다. 그리고 과일은 쉽게 상하는 것이라 잘 못 하다간 버리게 되는데, 나는 농사 지으신 분들의 고생을 생각해서 상하기 전에 미리 봉사자들한테 연락해서 기부를 합니다. 팔려면 팔 수도 있겠지만 팔기에는 양심상 좀 걸리는 것들은 미리 기부하니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걱정 안 해도 좋은 엄마, 항상 즐겁게 사는 엄마로 보이자는 것도 나의 원칙입니다."

경매 중개인 일을 하기 전에는, 제1회, 2회 재향군인 부인회 회장을 역임했고, 포항 차인회 회원으로 봉사도 많이 했고, 고급 장교의 아내로 자상한 남편과 착실한 아이들과 더불어 안락한 생활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덮고 여자들이 하기 어려운 경매중개인으로 뛰며 삶의 보람을 찾는다.

그녀는 말했다. '나 자신에 충실하고, 내 사업을 사랑하고, 내 집에 오시는 손님 마다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젊은 사람들은 딸이나 며느리처럼 조언도 해 주고, 이렇게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까지 현장에서 열심히 일 할 것입니다.'

일이 뜸할 때는 책을 읽고, 쉬는 날은 한문 공부를 하고, 붓글씨도 쓰고 사군자도 그리는 그녀, 일을 할 때는 전투병처럼 용감하게, 쉴 때는 단정한 요조숙녀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두 가지 자신의 모습을 잘 조화시키며 알찬 삶을 꾸려가는 그녀는, 우리 이웃의 귀한, 참 생활인이며 모범 중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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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솔 2012-03-06 17:17:22
경매가 진행 될 때에는 남자인 내가 구경하는 것만도 넋나갈 것 같던데, 그 와중에서 여자 경매사로 써의 활약이 대단해 보이는데다 틈틈이 책을 접하고 붓을 잡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