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 생각하면 아플 겨를도 없어요"

오늘도 아슬아슬 고물을 넘치도록 싣고 가는 신춘자 할머니

"13년 전에 가업으로 하던 공장이 부도를 당하면서 설상가상으로 4살 난 손자가 뇌졸중을 앓게 되고 며느리는 집을 나가고 아들은 방황하고 영감님은 병을 얻었지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당장 손자도 살려야 하고 파탄난 가정도 수습을 해야 했습니다. '소아뇌졸증' - 당시로서는 병명도 처음 듣는 희귀병이었고 지방서는 고칠 수도 없었습니다. 천우신조로 서울 병원들을 헤매다가 손자의 목숨을 살렸지만 수술 후에도 한 달에 몇 차례씩 생사를 넘나드는 극심한 후유증에 애간장을 태워야 했고 막대한 병원비에 쫓겨야 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손자와 가정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했고 밤낮없이 일을 했습니다..."

필자가 본 노인은 지금도 억척이셨다. 그리고 보는 이의 마음을 안쓰럽게 했다. 일흔이 넘은 고령에도 아슬아슬 쓰러질 듯 고물을 잔뜩 싣고 언제나 길에서 땀을 뻘뻘 흘리신다. 아무리 처지가 딱하다 해도 고령에 얼마나 힘이 드시겠는가.

다 같은 시민으로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노인은 밤낮없이 고물을 수집해 주니 국가적으로도 소중한 자원을 얻게 함으로써 고마운 일이고 열심히 일해 가족의 생계를 정부에 의존하지 않으니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서는 고맙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고물을 주워서 두 손자를 양육하고 아픈 손자와 영감님 병수발까지 드시니…. 할머님을 존경합니다.

"과찬이십니다. 내 손자요 내 영감님이시니 어찌하겠습니까? 며느리가 집을 나갔다고 손자가 아프다고 할머니마저 손자를 버린다면 만고에 손가락질 받는 조상이 되겠지요. 아무리 부모도 자식도 몰라보는 세상이라지만 저렇게 시퍼런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는데…"

― 고령에 힘드시지 않습니까?

"힘이 안 든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요. 요즘은 고물 모으기가 힘이 듭니다. 이제 몸도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고 고물 값도 예전 같지 않고 경쟁도 심해서 낮에는 노인들은 고물을 얻어 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낮에는 학생들 자취방을 청소해 주고 거기서 나오는 신문이나 헌옷가지를 얻어 와서 팔고 밤늦게 쓰레기가 모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고물을 수집합니다. 이렇게 밤낮으로 일을 해도 요즘은 고물 값이 떨어져 한 달에 삼십만 원 벌기가 힘듭니다"

― 정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까?

"20평짜리 주택이 있어서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주택을 팔고 정부지원을 받으라 하지만 그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 손자의 건강상태와 치료는.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지금도 주기적으로 재발해 힘들어 합니다. 건강상태는 뇌졸중이라는 병명만 들어도 짐작하시겠지만 아직 완치된 상태가 아니라 어린 것이 애를 먹습니다. 치료는 근년에 와서는 대구에서 처방을 받을 수가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전에는 발병할 때마다 서울까지 가야했는데 가는 동안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 할미는 가슴을 다 태웠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우리 큰 손자 건강한 모습을 봐야 할 텐데..." 할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 길에서 대담을 지켜보던 이웃의 한 노신사가 말씀을 거들었다.

"저 노인은 애국자요!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파지 한 조각, 빈병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으시고 골목길을 깨끗이 하고 아픈 손자를 위해 고물을 주어 양육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원망하지 않고 쓰러지는 가정을 지키고 영감님과도 화목하시니 그동안 할머니가 보여주신 근검절약 희생하는 정신과 자손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후손을 위하고 함께 살아가야할 공동사회를 위해 모든 부모님들이 배워야 할 덕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은 손자는 학원에도 보내신다지요?

"제가 죽더라도 손자들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배운 놈이 있어야 서로 의지하고 살지 않겠습니까? 할미가 손자 병을 고쳐줘야 하는데 고물을 주워서는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궁리한 끝에 시집간 딸이 매달 용돈을 조금씩 보내오는데 그 돈으로 학원에 보냅니다"

― 소원이 무엇입니까?

"우리 큰 손자가 병을 고칠 때까지 안 죽고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일구월심 우리 큰 손자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제가 살아있을 때는 집에서 밥이라도 먹고 아픈 몸을 의지할 수 있겠지만 내가 덜컥 죽기라도 하면 어찌 하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손자들을 생각해 아플 겨를도 없었지만 이제는 힘도 부치고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아직 손자 나이가 16살 밖에 안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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