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위한 일이라면 언제나 '오케이'

무료급식소에서 배식하고 있는 김두환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좋은 일 하는 사람은 다 호감이 가지만 그는 좀 특별했다. 인간적인 매력이 넘쳤다. 이름부터 드라마 속의 협객 김두한과 비슷하고 용태도 흡사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위력적인 안면 근육, 넉넉해 보이면서도 사람을 긴장되게 하는 분위기를 가졌으며 발상의 기발함과 웅대함이 영화 속에서 주먹의 황제 김두한과 정치인 김두한을 함께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김두환 다복회 회장은 웅변가였다. 자신이 성장한 과정을 얘기할 때는 애절함과 통쾌함이 있었고 소나기처럼 쏟아 붓는 역설을 듣고 있을 때는 누구라도 그를 만나면 속절없이 설득 당할 것 같았다. 김 회장은 그 동안 뛰어난 발상력과 재능으로 큰돈을 벌고 수많은 노약자들을 도왔으며 지금도 그를 믿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없으며 사회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고자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는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사람이기도 해 주변에서는 그를 후덕하고 재능 있는 마당발이라 부른다.

― 20년 전 대구월성성당 신축할 때와 동명성당을 대수리할 때는 큰 봉사를 하셨고 모금 방법이 기발했다던데 그때 얘기부터 먼저 듣고 싶습니다.

"20여 년 전 대구월성성당이 가건물에 있을 때 교회를 신축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신부님이 크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로선 신도 수도 적고 경제사정도 좋지 않아 막연했습니다. 그때 신부님을 찾아가서 대뜸 평신도인 제가 땅 650평을 성당 신축을 위해 기부하겠습니다하고 등기 서류가지 넘겨 드렸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신부님은 놀라워하셨고 저는 이 사실을 성당 주보에 크게 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당에 임원들과 신도들이 주보를 보고는 평신도가 이토록 많은 재물을 내어 놓았는데 하면서 너도나도 협력해 단시일에 30억 원이 넘는 건축비를 모금할 수 있었습니다. 동명성당은 10여 년 전 제가 성당 총회장을 하고 있을 때인데 시골 성당이라 많은 비용을 교우들이 감당할 수 없어서 친구와 선후배들을 동원하여 크게 음악회를 열어 해결한 일이 있었지요"

-다복회를 결성해 무상급식을 하게 된 동기는?

"지금 제가 사는 동네에는 기초수급자와 무의탁노인들이 많은데 복지관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급식을 해 하루 한 끼만으로 살아가는 노약자들은 공휴일이 되면 한 끼의 식사마저도 굶게 되는 사례가 많아 친한 사람들과 의논해 공휴일에도 무료급식을 하기로 3년 전에 뜻을 모았던 것입니다"

-식사는 누가 장만하고 비용은….

"음식 만드는 일은 대한적십자 회원들이 지원해 주고 배식은 다복회 회원들이 하며 비용은 회원 50명이 연회비 60만원씩을 일시불로 내 충당하고 부족분은 임원들이 부담합니다. 매일 200여 어르신이 식사를 하시고 70세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친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적잖은 연회비를 매년 거출하고 배식봉사까지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는데?

"우리 회원들은 모두가 지역의 유지 분들이고 유능하고 자비로우신 사장님들이십니다. 저도 돈을 잘 벌 때는 상부상조하는 인간관계를 많이 만들어 놓았고요.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무료급식뿐 아니라 가난하거나 소외되고 억울한 약자를 보면 그때그때 필요한 상당액을 모금해 주기도 하고 해결책도 마련해 줍니다." 곁에 있던 회우가 말을 거들어 주었다. "김 회장은 생각하는 것이 큼직큼직할 뿐 아니라 대인관계는 그 폭이 대단하여 지난날의 경우 새로운 사업체를 만들 때는 한 번에 초청장을 2만장씩이나 보낼 때도 있었습니다." 그제야 필자는 김두환 씨가 팔방미인이 되고 만능봉사자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김 회장의 어린 시절은 기구했고 성장과정은 신기하리만큼 특색이 있었다. 김두환 씨는 어린 시절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중 3때는 졸업사진비가 없어 고민하다가 졸업을 포기하고 16살에 무보수로 자동차정비공장에 취직해 남들은 9시에 출근하는데 자신은 6시에 출근했고 남들이 6시에 퇴근할 때는 11시까지 일해 입사 4개월 만에 월급 3천 원씩을 받게 되었으며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익히려고 밤을 지새우며 자동차 엔진을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수만 번 거듭해 2년 만에 최고의 기술자가 되었고 못 고치는 자동차가 없었다. 그리하여 보통 사람은 20년은 배워야 정비 반장을 하는데 그는 입사 2년, 18살에 삼천리 자동차정비공장에서 정비반장이 되었다. 25살에는 자립했고 뛰어난 기술력과 신용으로 큰돈을 모았으며 그 당시 외제차 수리는 누구도 그를 당할 자 없어 그 업계선 유명했으며 친구를 좋아하고 돈 잘 쓰고 특히 약자들을 희생적으로 도와주는 의협심 강한 멋진 사람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은.

"제 주위에는 이해심이 많고 덕 있고 유능한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친지들과 뜻을 모아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가일층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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