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이 저랬던가

붉은 벽돌을 완독해 보겠다고

지문이 닳도록 아픈 독법으로 기어오른다

한번에 다 읽지는 못하고

지난해 읽다만 곳이 어디였더라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다 보면 여러 번 손닿는 곳은

달달 외우기도 하겠다

세상을 등지고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내가 그랬듯이 등 뒤 세상은 점점 멀어져

올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거리다

푸른 손끝에 피멍이 들고 시들어버릴 때쯤엔

다음 구절이 궁금하여도

그쯤에선 책을 덮어야겠지

아픔도 씻는 듯 가시는 새봄이 오면

지붕까지는 독파해 볼 양으로

맨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읽기 시작하겠지

감상:발견이 참신하면 시 전체가 비유의 힘으로 에너지를 갖습니다. 이 시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손끝으로 점자를 읽는 맹인’을 담쟁이덩굴로 바꿔내는 절묘한 발상이 문장에 탄력을 줍니다.(시인 윤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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