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편안해야 온 가족이 행복"

대구시 진천동 최윤호씨.

사방팔방을 둘러보고 탐문해도 효자는 없었다. 이 땅에 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꼭꼭 숨어버린 것일까? 다 사라져 버린 것인가? 백성을 나라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은 섬길 부모님이 이 땅에 계시고 사랑할 자식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아닐까? "효자 없는 사회, 나라의 근본을 무엇으로 대신할 것인가?"

홀몸노인을 남달리 섬기고 제자들에게는 영원한 스승으로 존경받는 신천호(전 고교교장)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곳은 효자 최윤호(68)씨가 살고 있는 대구 진천동의 자그마한 아파트 - 필자가 현관에 들어서자 효자는 정중히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으면서도 목소리를 좀 낮추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님이 막 점심을 드시고 낮잠을 주무신다는 것이다. 필자는 적이 놀랐다. 그제야 이 집은 효자가 살고 그 효자를 길러내신 노모가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옛말에 '사람은 한 가지 일로 미루어 다른 여러 가지 일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아파트 문간방으로 안내된 필자는 이윽고 단정하게 한복을 차려 입으시고 비녀를 꽂으신 노모의 용태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노모의 연세는 아흔여섯! 겉으로 뵙기에도 어르신은 아직까지 정정하셨다. 필자는 또 한 번 놀랐다. 소문대로 최윤호 씨의 지극한 효성을 모친의 건강과 당당하신 모습을 보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친이 어느 방에 거처하시는지 궁금했다.

"어머님은 큰방에 계십니다. 모친은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어른이십니다"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이신 모친이 큰방을 차지하면 가족들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언뜻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리 집에서는 집안일의 대소사를 어머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에 모친이 자유롭고 편하시면 온가족도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할머님의 위상은 손자, 손녀들이 할머님을 대하는 심리에도 영향을 줘 어른을 공경하고 가풍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구구절절 효자에게만 들을 수 있는 귀한 말씀들이였다. 필자는 질문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자식한테 진심으로 바라는 효도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면 부모님이 바라는 효도란 자식들을 고생시켜 가면서 과도하게 물질적으로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식이 평소에 부모님 속마음을 헤아려서 내 자식답게 예를 갖추어 형편에 맞게 부모 대접 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부모님이 노령이라 할지라도 집안일에 대해선 그 결정권을 부모님께 드려서 부모님의 권위를 세워주시고 집안어른의 도리를 자진해서 하시게 함으로써 집안일도 도와주시고 집안을 평화롭게 하고 유익하게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는 일거리가 삶의 소재입니다' 부모님이 연세가 높아도 친히 하시고 져 하는 일은 뜻대로 하시게 하는 것이 효도일 것입니다."

효자의 말씀은 듣고 또 들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찾아온 이유를 말하고 효행을 세상에 알려 사회에 귀감이 되게 하자고 제안했다.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는 "저를 효자라고 하는 것은 만부당합니다. 누가 들을까봐 두렵습니다…" 이렇게 말한 효자는 백범 김구선생님이 실천한 참 효행(백범일지)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백범은 부친이 위독하실 때 자신의 허벅지 살점을 떼어내 불에 굽고 피를 받아서 약이라고 말씀드리고 잡수시게 했으며 잘 드시는 것을 보고는 한번만 더 해드리면 아버지 병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다시 아무도 모르게 살점을 더 떼어내려 하였으나 너무나 아파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그것을 두고 백범은 자신을 만고에 불효자라 탄식했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더는 강요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다시 신천호 선생님과 한국예절대학 김동락 국장님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게재할 수가 있었다.

김국장은 최윤호 씨를 극구 예찬했다. "그분의 효행은 하늘도 감동할 것입니다. 평생을 하루같이 출퇴근 시에는 노모께 인사드리고 퇴근할 땐 모친이 좋아하시는 음식이나 과일을 손에 들고 귀가했으며 외식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땐 노모를 그 식당으로 모셔 그 음식을 드시게 하고 집에 와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어린아이처럼 재미있게 말씀드려 노모를 기쁘게 해드리고 잠드신 후에야 방을 나왔으며 집안일의 대소사는 모친께 결정권을 드려 권위를 세워 주시고 언제나 당당하실 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대구시청에서 정년퇴직한 그는 청렴하고 근면한 공무원으로 대구시장 상 2번, 내무부장관 상 2번, 경제기획원 장관상,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고…"

지면관계로 효부 홍옥순(최윤호 씨의 처)씨를 소개하지 못한 점 아쉽게 생각합니다. 효부께선 겸손하셨다. 어떤 칭찬도 사양했다. "그동안 시어머님을 모신 일이 작은 수고였다면 어머님이 제게 주신 사랑은 하해와 같아서 불편보다는 자유롭고 편안함이 훨씬 더 컸고 '효란 행복한 가정의 소중한 원리'라는 지고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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