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는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죠"

대구 남산동 박약회 서예실에서 소음 권오경 서백.

소음(素蔭) 권오경(82) 서백(書伯)의 일필휘지에 주눅이 되어 서당에선 제대로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훈장님 같았고 공맹학을 전공하는 학자들 같았다. 서예실 벽면은 온통 명필과 주옥같은 명구들로 가득했고 방문객들은 스스로 삼가고 마음가짐은 저절로 경건해졌다. 명필은 써놓은 글을 볼 때하고 그 글을 쓸 때 직접 보는 것 하고는 그 감동의 차이가 천양지판으로 달랐다. 선생님이 붓을 잡고 집중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정신일도의 경지 바로 그것이었다. 서도의 신비의 차원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선생님은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라 하셨고 말씀은 아끼셨다.

서도를 왜 예술이라고 하는 지조차도 몰랐던 필자는 무례를 범할까봐 제대로 질문도 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은 통 말씀이 없으셨고 근엄하셨으며 한마디 말씀에도 크게 무게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필자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줄곧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떠 올리게 되었다. 제자들이 본 공자의 용모와 태도는 언제나 온화하시되 엄숙하셨고, 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았으며, 공손하시되 편안하셨다. 그리고 말씀을 하실 때는 뜻이 도리에 맞고 장중하였다.

이윽고 주재께서는 필자가 답답해하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서도와 박약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두 권의 책과 약간의 자료를 내어 주셨다. 선생님은 서예실에서 글씨만 지도하는 게 아니라 후학들에게 공맹학을 가르치고 계셨다.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절박하게 해법을 찾고 있는 '소통'의 과제도 들어 있었다. 왜 소통이 문제인가? 그것은 불통이 우리의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통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 된지 오래다. 그러면 불통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불신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신의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위정자들의 '거짓말'이 가장 큰 요인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 공자님은 사람이 신용을 잃으면 우마차에 멍에가 없어 앞으로 나가갈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공자님은 "신용은 국가의 도덕적 자본을 대표하는 핵심으로서 나라를 떠받치는 3가지 기둥인 병력, 식량, 믿음 중에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규정했다." 국민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정부를 믿지 못하면 군대가 있고 양식이 있어도 그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무신불립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부부간, 형제간, 사제 간에도 서로 믿지 못하고 심지어는 부자간에도 재판을 해야 하는 기막힌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신용을 되살리고 소통하는 신용사회를 만들 것인가? 공자님은 "나라의 근본은 백성들의 믿음이고 위정자의 정직이 정치의 근본이며 솔선수범이 정치의 대도"라 하셨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결자해지의 정신에서 지금부터라도 위정자들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정직과 신의를 소중히 하고 국민 앞에서 솔선해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권자들은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단호히 경계하고 바른 말하는 정치인을 키우고 성원해야 할 것이다.

선생님의 방대한 가르침을 다 소개드리지 못해 아쉬움을 느낀다. 권오경 주재께서는 지금도 죽농서단 고문, 한국서예협회 자문위원, 담수회 자문위원, 박약회 서예실 주재를 맡고 계시며 한국서법 예술대전 심사운영·초대작가상, 죽농서예대전 심사운영·초대작가상, 대구 서예대전 심사운영·초대작가상 등 다수를 수상하신 대구 서단의 중심에 계시는 존경받는 거장이시다.

대구 박약회는 유학을 실천하는 선비들의 모임으로 2003년에 설립되었고 현재 서예를 배우는 사람은 80여 명이다. 박약(博約)의 명칭은 박문약예(博文約禮)의 약자로 널리 배우고 익혀서 예로서 바르게 행동한다는 뜻이며 설립목적은 유학의 전통사상을 연구, 계승, 보급하고 전통문화의 현대화 및 생활화를 추진하여 도덕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대구 박약회서는 공자님 가르침 중에서도 신의와 성실, 예의와 염치 같은 근본적인 사람의 도리를 연구하고 가르쳐 가정과 사회를 안정되게 하고 국가의 도덕력을 높이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요약해보면 핵심은 수기안인으로 귀결된다. 자기를 부단히 갈고 닦아서 남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강조하신 선의와 성실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원리로서 자아완성의 원리인 동시에 사물완성의 원리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수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심으로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사물을 보아도 봐야할 곳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해 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성인의 말씀 중에 인생에 있어선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생각나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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