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재 훈 <포항강변교회 목사>

겨울은 이별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이별은 외로움이 전제된 헤어짐이다. 홀로 된다는 것은 외로움을 동반하는 아픔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북적되는 곳으로 발걸음이 향하게 되는 것이다.

연말연시(年末年始)가 되면 많은 모임들이 있게 되고, 그 모임들의 주인공 또는 손님으로 자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먹고 마시면서 무엇인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의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며, 겨울 중에서도 지금 바로 12월 하순 이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언제든지 지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소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사실 외로움이라고 할 수 없다. 구태여 외로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진 사람들의 사치일 수 있다.

물론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외로움이 없다는 의미의 말은 아니다. 단지 정녕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겨울이면 참으로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찾아 주는 이 없는 독거노인 또는 소년소녀 가장들이 바로 그들이다.

경제가 호황을 누릴 때 마냥 앞뒤 다투어 그들을 돕겠다는 선량들이 확 줄어버린 현실은 그들에게는 더 없는 외로움의 계절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픈 것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것,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것, 사고 싶어도 돈이 없다는 것은 가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외로움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이런 외로움으로 아파하는 이웃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들뜨고 흥분되는 연말연시 분위기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동일한 육지에 살면서 마치 외딴 섬에 살고 있는 듯이 연말연시를 보내고 맞이해야 하는 외로움의 사람들이 있다. 저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이 세상사는 보람이고 가치이고 의미일진데 외로움의 사람들을 외딴 섬에 그냥 방치해 둔 채로 가진 사람들의 또 다른 외로움에 함몰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하고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가 저 외로운 사람들의 존재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라도 찾아가야 할 계절이 아닌가?

외로움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고, 작게 만든다. 외로움은 혼자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삶의 높은 장애물이다.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지 않으면 그들은 넓은 세상으로 나오기를 꺼려하게 된다.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외로움은 결국 자신을 아프게 만들고, 자신을 죽여 간다. 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만이 그들의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 길이다.

‘연금술사’로 이미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소설 ‘오 자히르’ 에는 이런 글귀가 소개된다. “ 홀로 있는 것 보다 굶주리는 편이 낫습니다....<중략>... 가장 나쁜 건 혼자서 비참하게 제네바의 거리를 걷는 게 아닙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그가 내 삶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최악의 경우입니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에, 약하기 때문에만 끼는 감정이 아니다.

외로움이란 가난과 약함과 함께 자신이 세상에 어디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즉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잊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은 깊은 외로움에 빠져드는 것이다.

가진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이 찾아가든 아니면 누군가가 찾아오든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가진 자들의 외로움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인조 외로움일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하고 헐벗은 약은 우리의 이웃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찾아주는 이 없기 때문에, 홀로 세상에 던져져 있는 삶의 무게들이 그들의 외로움을 더 한층 솟구치게 만드는 것이다.

연말연시다. 도심지의 소란한 사람들 속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할 때다. 가난하여 외롭고, 아파서 외롭고, 없어서 외롭고....그래서 찾아주는 이 없어 외로운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한 번의 따뜻한 손 내밈과 눈 길 한 번 줌이 필요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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