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현 부사장

행정의 감시자인 지방의회가 분쟁의 조정자로서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지방의회는 행정사무감사와 시정 질문을 통해 집행부를 통제하고 있다. 조례개정 또는 폐지의 입법기능과 예산에 대한 심의, 확정, 결산승인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임무가 막중하다.

주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된 주민의 대표 기구가 지방의회기에 주민에 대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각종 분쟁을 조정하고 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지방분권화 시대의 지방의회 의원들이 기본적인 책무도 모르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집행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 예산안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러한 정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합목적으로 편성되어 있는지를 심도 있게 심의해야 함은 기본이다. 주민의견을 수렴하여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정책기능은 국회와 다를 바 없다.

지방의원들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감시와 언론의 지속적인 비판과 시민들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 지방의원은 생활현장에서 주민의 대표로서 주민에 대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각종 분쟁을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지방의원들은 분쟁의 조정자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터널개통식에서 일어난 사태를 살펴보면 짐작이 간다. 평소 의정활동에 충실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민원이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 투자한 국도 31호선 봉길 터널 준공식 날인 지난달 27일 일어난 집단민원 사태를 두고 뒷이야기가 많다. 이날 오전 11시 거행될 예정이던 준공식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반발로 행사를 놓칠 뻔 했다.

사건의 발단은 인근주민 21세대가 터널 공사발파로 인해 가옥에 균열이 생기고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보상이 안됐다면서 '선 보상' '후 준공'을 요구하면서 일어났다. 이때문에 축제의 자리가 돼야할 식장이 험악한 분위기로 돌변한 것이다.

준공식에 참석한 시장과 도의원, 시의원, 공단 이사장이 긴급회동을 가졌지만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곳이 지역구인 이상효 전도의회의장은 송명재 방폐물관리공단 이사장에게 거세게 항의 후 퇴장했다. 진퇴양난이 된 권영길 경주시의회 부의장은 축사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올라 침묵으로 일관해 주민시위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참석자들은 사태를 예상치 못한 1차 책임은 주최 측에 있지만 생활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행정기관과 지방의회가 분쟁의 산실임을 꼬집었다. 이날 개통된 읍천~봉길 구간은 총 6km거리에 왕복 2차선으로 방폐물관리공단이 900억 원의 예산을 투입,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를 통과하는 기존 국도 31호선을 대체하기 위해 건설됐다.

이제 봉길 터널 준공으로 한국방사성폐기물 공단이 약속한 3천억 원 특별지원금 지원에 이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이전, 양성자가속기 사업 등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어쨌든 지방의회는 지역의 각종 갈등과 대립에 엄하게 대처해야 한다. 경주시의회가 지역에서 분쟁의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후반기 의장단 선거 이후 의회가 두 동강난 것은 리더십에 문제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