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곤 청솔밭웨딩홀 회장

이지곤 청솔밭웨딩홀 회장.

"세상에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돈이 아니라 사회의 돈을 관리하는 사람 일 뿐 그 돈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는 거니 봉사라 할 수 없는 거지요."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사회의 어두운 곳을 향해 끊임없는 사랑을 펼쳐온 청솔밭웨딩홀 이지곤(68) 회장은 자신의 나눔은 봉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우리 사회가 자신에게 맡겨준 사랑과 재산을 나눠주고 돌려주는 관리인일 뿐이어서 아무리 나눠줘도 아까울 게 없고 늘 행복해 질 수 있는 비법이라는 게 그의 나눔 철학이란다.

특히 "고여 있는 것을 퍼내고 나눠주는 만큼 우리 사회가 늘 다시 가득 채워 주더라"며 "굳이 봉사라는 이름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나눔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다.

이 회장은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서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을 오가며 고철 사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여섯 살 어린나이에 전쟁이 발발해 아버지를 갑자기 여읜 것은 물론 형과 동생들까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정형편은 급격히 기울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장노릇을 하게 됐다.

이발소 보조원을 시작으로 택시기사, 화물트럭 운전 등 입에 풀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다 보니 해보지 않은 일보다 해본 일이 더 많을 정도가 됐다.

맨몸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이 회장은 1986년 부인 배정숙(64)씨의 맛깔스런 음식솜씨를 앞세워 포항시 남구 대도동에 '한솔밭'이라는 식당을 열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던 이 회장의 성격에다 부인 배씨의 음식솜씨, 장사 수완이 더해져 지역 맛집으로 손꼽히게 됐다.

이 회장은 "평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아 음식점을 기점으로 1993년 대왕예식장 옆에 '청솔밭뷔페식당'을 열고 뷔페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면서 "부인의 조언과 도움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봉사, 그 참맛을 알아가다.

한솔밭 식당이 자리를 잡고 1993년 문을 연 청솔밭웨딩도 크게 성장하던 1995년 어느날 이 회장은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에 서게 된다.

이날 이 회장은 우연히 지인과 함께 영덕군 지품면 경로잔치에 참여하게 됐고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 봤다.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 가장 절실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던 그는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작지만 뭔가를 나누며 살아가는 게 올바른 삶이라고 결정한 뒤 바로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나눔 인생은 19년째 지품면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펼쳐온 것을 비롯해 작은 도움이 필요로 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나섰다.

경로당 뿐 만 아니라 비인가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 사랑의집, 노인복지시설 정애원, 아동양육시설 선린애육원 등 곳곳을 방문해 13년간 172차례에 걸쳐 단순히 돈으로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직접 발로 뛰는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청솔밭웨딩으로 전환한 뒤 대출을 받는 등의 악조건 속에서 이 회장의 봉사정신은 더욱 빛을 발휘했다.

'청솔밭웨딩하면 합동결혼식'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2002년부터 10여 년 동안 다문화가정 뿐 만 아니라 장애인에게 새 출발과 희망의 기쁨을 안겨주고 있는 합동결혼식은 남을 돕는 일에 아낌이 없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결혼식에 들어가는 모든 경비를 비롯해 1박2일 신혼여행지까지 직접 수발해 주는가 하면 몇 년 전부터 생활정착금까지 주고 있다.

이 회장의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006년부터 관내 저소득층 건강보험료 지원 사업으로 해마다 720만원씩 납부해 2008년 4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최근에 울릉도에서 한 주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줄 알고 병원 문턱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나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정말 행복했다'라는 말을 듣고 눈시울이 붉어졌다"면서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지역 내 교통장애인협회는 물론 소년소녀가장후원회 등 크고 작은 봉사단체들이 행사를 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등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하게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게다가 방위협의회장으로 재직, 관할부대 예비군 훈련을 하면 달려가 음료 등을 전달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고 선진사회를 위해 캠페인 참여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남들 보기에 봉사활동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그저 콩 한쪽이라도 나눠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비워지면 고맙게도 손님들이 와서 다시 채워줘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봉사, 인생의 동반자가 되다.

나와 자신의 가족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기 그지없지만 봉사에 대한 목마름은 하면 할수록 더해만 간다.

특히 물가상승으로 동종업계조차 가파르게 가격을 올리는 상황이지만 10여 년간 식대 등 가격을 동결, 시민들의 살림살이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더욱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웃을 도울 수 있을까' 고심하는 이 회장은 두 딸에게도 직접 회사에서 땀 흘려 월급을 받아가게 해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사랑의 실천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회장은 "봉사를 하면 내가 더 행복해 지더라"며 "좋은 일을 하고 마음을 비우니 결과적으로 모두 순탄하게 흘러갔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한테 도움을 받지 않고 열심히 살다보니 빈 것을 채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됐다"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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