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백성의 평화·안녕 지키려 동해 수중릉에 잠들다
나라와 백성의 평화·안녕 지키려 동해 수중릉에 잠들다
  • 권현구·장성희 작가
  • 승인 2013년 07월 11일 21시 38분
  • 지면게재일 2013년 07월 12일 금요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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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부부의 신라왕릉 탐방-16 문무대왕릉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바닷가에 위치한 문무대왕릉 전경.

해안 도로를 따라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로 가는 길이다. 더 넓은 동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학창시절 절친한 고향 친구는 동해에 가서 수평선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고향에서도 바다를 볼 수는 있었지만 바로 앞에 섬들이 가득 들어차서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없었던 그 때는 수평선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조금만 나와도 아름다운 수평선을 눈이 시리도록 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아직도 고향에 살고 있는 그 친구에게 이 모습 그대로 담아서 보내고 싶어진다.

한참 달리다보니 왼쪽에 정자가 보인다. 신문왕이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받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견대다. 잠시 내려서 가보았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대왕의 수중능이 소나무 사이로 오롯이 들어온다. 마치 한 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묵묵히 감은사지를 지켜온 두개의 석탑.

안내판에 만파식적의 유래가 적혀져 있다. 신문왕은 이곳에서 바다의 큰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마음을 합해 보낸 검은 옥대와 대나무를 얻게 되었고,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의 천존고에 보관하여 적병이 쳐들어오거나 병이 돌거나 가뭄 등 나라에 좋지 못한 일이 있을 때 이를 불어 모든 어려움을 가라앉게 했다는 것이다.

이견대에서 조금 더 가면 오른쪽은 감은사지로, 왼쪽은 문무대왕릉으로 가는 길이다. 먼저 능 쪽으로 갔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미역, 다시마, 오징어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바닷바람으로 말린 신선한 해산물에서 먼 바다냄새가 난다. 수중대왕릉 안내판이 이곳에 있다.

동해의 호국룡 문무왕의 휴식터였다는 감은사지 금당터.

문무대왕릉 (文武大王陵)//사적 제158호//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26

경주시내에서 약 36㎞ 떨어진 거리에 있는 대왕암(大王岩)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제30대 문무대왕(文武大王, 재위 661~681)의 바다무덤[海中陵]이다.

문무대왕은 아버지인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대왕암은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길이 약 20m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인공으로 사방에 수로를 만들어 그 가운데에 조그마한 수중 못을 만들고, 그 안에 길이 3.6m, 너비 2.9m, 두께 0.9m 크기의 화강암을 놓았다.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그러면 동해의 호국룡(護國龍)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라는 대왕의 유언에 따라 불교식 장례법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이곳에 모셨다고 전한다.

대왕암은 가까이 있는 이견대(利見臺), 감은사(感恩寺)와 서로 깊은 관계가 있으며 문무대왕의 거룩한 호국정신이 깃든 곳이다. 이런 형태의 능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한편 이 곳은 문무대왕의 유골을 뿌린 곳[散骨處]이라는 의견도 있다.

안내판에는 위에서 찍은 수중왕릉의 모습이 사진으로 있다. 가운데에 열 십 자 모양으로 물길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다 쪽으로 보니 넓은 백사장이 길게 펼쳐진 봉길해수욕장이다. 하얀 파도가 밀려와 잘게 부서지는 바다, 그 바다 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바위섬, 바로 저것이 문무대왕릉인 대왕암이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200m나 떨어져 있다고 하니 쉽게 가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바다 가운데에 있는 무덤이라 배를 타고 일부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대왕암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쉬고 있는 저것들은 무엇일까? 바다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갈매기들이다. 대왕암 주위는 마치 끼룩거리는 갈매기들의 놀이터 같다. 내 옆으로 날갯짓하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도 있다.

문무대왕은 아버지인 무열왕의 뜻을 이어 삼국을 통일한 왕이다. 어머니는 김유신의 막내 누이인 문명황후이고 왕비는 자의왕후이다. 모두 우리가 이름을 많이 들어온 사람들이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은 일본이 망발을 일삼는 독도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큰소리로 호통이라도 쳐서 억지를 쓰고 있는 일본사람들의 잘못을 일깨워주었으면….

검은 몽돌이 섞인 모래사장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친구들과 함께 온 학생들, 다정하게 걷고 있는 연인들도 보인다. 대왕암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밀려오는 파도와 장난을 치기도 한다. 대왕암의 영험을 믿는 것일까? 무속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촛불을 켜두고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마치 바다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남편은 그 모습들을 사진기에 담기 바쁘다.

문무대왕릉과 관계가 깊다는 감은사지로 향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뚝 솟은 탑 두 개가 보인다. 문화유산해설사를 찾아서 절터로 같이 올랐다.

나란히 서있는 두 탑은 멀리서 보는 것보다 더 우람하다. 가까이 가서는 사진기에 탑 전체를 담기 힘들 정도다. 기울어짐이 전혀 없이 안정된 모습으로 떡 버티고 서서 천 년이 넘게 절터를 지키고 있다.

1959과 1960년에 걸쳐 서탑을, 1996년에 동탑을 해체 복원했는데 서탑과 동탑에서 금동제 사리함과 그 속에 사리가 들어 있는 수정으로 만든 사리병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찾고자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신문왕이 완성했다. 신문왕이 아버지의 호국충정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감은사라고 이름 지었다. 특이하게 기다란 돌널들이 걸쳐진 밑으로 길이 있다. 마치 돌다리를 놓은 것 같다. 바로 금당터인데 동쪽에 구멍이 있다. 이곳으로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쉬어간다는 것이다. 남북보다 동서로 더 긴 회랑이 있었고 금당의 바닥구조는 H자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해설사는 설명을 덧붙인다.

감은사지 밑으로는 푸른 벼들이 일렁이는 너른 들이다. 옛날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절까지 오려면 바닷물이 있어야 되겠지. 절터 앞쪽에는 배를 댈 수 나루터 같은 곳이 지금도 남아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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